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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은 다가 오는 것

현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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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미순(치유상담대학원)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무려 10년의 세월을 이곳에서 보내다니….
나는 2010년에 치유상담연구원 일반과정에 입학하여 전문과정을 마치
고 2018년에 치유상담대학원에 입학하여 이제 2019년 하반기에 마지
막 학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 여름 3학기를 마치고 감수성 훈련을 받던 중 한 학우가 물었다.
“10년 동안 무엇을 한 거야?”
도대체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곳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을 머무르게 했
을까?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던 13살 때 아버지의 자살을 목격했다. 그 사실
을 외가에 간 엄마에게 알리기 위해 한밤중에 십 리 길을 혼자 자전거를
타고 가야 했다. 그 어둠 속 공포가 나를 삼켜 버렸다는 것을 중년의 나
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불빛 한 점 없는 칠흑같은 어둠 속의 시골길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
난다. 자전거 바퀴가 비포장도로에 부딪히면서 덜컹거리는 소리, 스산
한 바람 소리, 도랑에 물 흐르는 소리, 이상한 벌레 소리, 공기가 온몸
을 때리는 소리…. 온갖 소리에 나의 촉각은 예민하게 반응했고 작은
소리에도 놀랐다. 심장은 쪼그라들었고, 모든 감각들은 경직되어 굳어
져 버렸다.


연구원과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그 당시에 느꼈던 두려움과 공포가 내
몸 구석구석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13
살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을 겪었는데, 어느 누구도 나를 위로
하거나 돌보아 주지 않았다. 더욱이 3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버지
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한 채 철저히 침묵해야 했다. 그
침묵과 함께 나의 두려움과 공포도 잊혀진 듯 묻혀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겨울방학이 시작되었고 평소 나를 예뻐해 주셨던
담임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냈다. 아마도 따뜻한 위로와 돌봄을 받고 싶
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이런 바람은 산산조각이 났다. 선생님은 나
를 위로해주키는커녕 방학 중에 자기에게 무례한 편지를 보냈다며 나쁜
아이로 취급했다. 졸지에 나는 아버지와 믿었던 선생님을 동시에 잃어
버렸다. 이로 인해 나의 안전은 산산이 부서지고 날아가 버렸다. 이때부
터 나는 ‘나’로 살지 못하고 아빠가 자살한 아이라는 수치심 속에 눈치
보는 아이로 살아야 했다.
아버지의 자살과 집안의 침묵, 믿었던 담임선생님의 거절과 배신. 나는
꿈도 꾸기 전에 일찍부터 어딘가에 갇히고 매여 있게 되었다. 그것은 불
안함과 우울함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공부하고 싶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갈망이
언제나 꿈틀거렸다. 그러나 무언가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이 나와 세상
앞을 가로막고 있는 듯 나아갈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그저
참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책임과 역할에 충실하
며 살아왔다.


결혼 후의 삶도 결혼 전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보다
는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엄마로의 역할과 책
임으로 살았다. 기쁨은 사라졌고 경직된 표정과 굳어져가는 몸을 보면
서 뭔가 잘못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래도 나의 아픔을 자녀들에게 전
해주고 싶지 않아서, 내가 하고 싶고 받고 싶은 모든 것을 자녀들에게
쏟아 부었다. 자연스럽게 나의 꿈과 소망은 자녀들에게 전가되어, 아이
들이 학교를 다니는 건지 엄마인 내가 학교를 다니는 건지 분간하기 어
려울 만큼의 열성을 쏟았다. 그 덕분에 교장선생님의 추천으로 학교에
서 근무를 하게 되었고, 나는 그곳에서도 성실과 열정으로 근무했다. 행
정실, 과학실, 보건실 등 내가 원하는 부서는 어디든 근무하면서, 초등
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에 대한 아픈 기억을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면서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동료 선생님들과 어울리면서 나의 선생님들이 떠올랐고 좋아했던 고등
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 보고싶어졌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편지를 썼
다. 그 계기로 선생님과 다시 만나게 되었고 선생님의 퇴임사 축사를 하
게 되었다. 제자의 삶에 대한 선생님의 응원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의
첫 제자이면서 마지막 퇴임축사를 하게 되는 영화 같은 이야기를 내게
선물해 주셨다. 내 자녀보다 어린 선생님의 제자들 앞에서 떨리는 마음
으로 단상에 올랐다. 긴장과 떨림으로 축사를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간
그 순간은 나의 상처와 아픔과 설움들이 기쁨과 감동으로 바뀌어갔다.


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힘은 다시 나를 배움의 장으로 안내해 주어 사
이버 대학에 입학하였고, 예수전도단 제자훈련에 참여하였다. 2010
년 예수전도단 독수리 제자훈련을 통해 주님은 늘 나와 함께 해 주셨
고 인도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라는 정체
성도 회복하게 되였다. 훈련을 마치고 교회의 선교부에서 헌신했다.
미자립교회 선교로, 단기 선교로, 크고 작은 사역들을 맡아 섬기면서
이상함과 궁금함이 생겼다. ‘언제나 같은 나인데 어떤 때는 내가 능력
자 같고 또 어떤 때는 내가 부족하고 바보 같을까?’ 그 질문은 기도로
이어졌고 주님께 집중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게 능
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의 말씀이 살아서 경
험되었다. 내 능력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음을 알게 해 주셨다. 포도나
무에 붙어 있는 가지만이 열매를 맺는다는 진리를 선교부 사역을 통
해 알게 해 주셨다.


이제 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신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나
의 상처와 나약함의 자리가 ‘밭에 숨겨진 보물’을 찾을 수 있는 자리라
는 것을 안다.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했던 치유원 입학과 학문
적으로 상담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 대학원 과정은 어쩌면 내게 소명으
로 다가오는 것 같다. 직업은 찾는 것이고 소명은 다가오는 것이라는 교
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지금 이 자리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늘의 선
물 같다.


오랜 세월 나는 감정의 언어들을 잊고, 감각의 반응을 무시하며 살아왔
다. 마음을 나누어야되는 상황에서도 일을 처리하듯 합리적으로, 전략
적으로 살아왔다. 그로 인해 몸도 마음도 단단하게 굳어졌고 거칠어졌
고 사나워졌다.
그러나 나는 이제 상처와 고통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졌다. 상처와 고
통이 나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메시지였음을 이곳을 통해 알게 되었
기 때문이다.
행복하게 사랑받고 사랑하며 살고 싶었는데, 이제 막연한 것들이 선명
함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과거의 경험에 새로운 경험이 쌓여서 경험
의 폭이 불어났다. 깊어진 경험의 세계는 현재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
력을 준다.


몇 년 전 호주 여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은 여행 마지막 날이었고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가는 길이었다. 밖에 억수로 비가 내리고 있는데,
몸은 지치고 마음은 아쉬움으로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여고
시절이 생각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기사님의 정서인지 배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중년의 일행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절로 합창을 하
였다. 그렇게 여러 곡을 부르다 갑자기 일행 중에 있었던 8살 꼬마가 생
각났다. 우리만 노래를 부르는 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꼬마에게 노래를
시켰다. 그 꼬마는 수줍음도 없이 기다렸다는 듯이 당당하게 노래를 부
르기 시작했다.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내 안에서 쿵! 하는 소리가 울리고 멍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내 안의 변화를
그냥 가만히 느꼈다. 무언가 살아나는 경험이라고나 할까.
현재의 나는 불완전한 시도의 과정과 일상의 기적으로 채워온 나의 삶
을 사랑하고 또 다른 과정과 기적을 꿈꾸며 나아가고 있다. 13살 꼬마
였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 나를 보고 있다. 지금 나와 나의 만남은 환대
의 만남으로 변했다.
"환대란 손님에게 집중하는 능력이다.
환대란 손님이 자신의 영혼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해내는 능력
이다. 환대는 다른 사람의 외로움과 고통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자
신들의 외로움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다."
현재 대학원에서 ‘위기와 회복탄력성’ 수업을 듣고 있다. 또 ‘감정코칭’
훈련도 받고 있다. 상처로 인한 감정, 그 감정에 대한 감각의 기억을 재
구성하고 있다. 수치심과 열등감이 존중과 수용과 인정으로 향하게 되
었다.


감정코칭과 회복탄력성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 내가 경험한 그
대로, 내가 살아낸 그대로를 말하고 싶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은
나를 꽃으로 피어나게 했던 치유원과 대학원의 모든 교수님들과 함께
공부한 학우들 그리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나의 지금은 기적이다. 늘 하나님을 기억하고, 내가 누구인지 인식하고,
오늘 성령이 하시는 말씀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평생토록 헌신하
고 감사하며 살아가기로 결정했다.


얼마 남지 않은 졸업식을 기대하며 기다린다. 유한함에서 영원으로 주
님나라의 러브릿지가 되고 싶다. 거위의 꿈이 공작의 꿈으로 날개를 활
짝 펴고 자유롭게 하늘길(별칭)을 날아오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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