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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기] 치유의 역사책

ch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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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만 매달려온 오십대의 한 회사의 사장이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토록 열정적으로 이루어 온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며 하루하루 지탱하기도 어려워 자살을 생각했다. 자살 직전의 그는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 그가 처한 사정을 이야기했다. 저간의 사정을 다 듣고 난 목사님의 처방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시편 23편을 하루에 다섯 번 명상하되 반드시 말씀이 설명하고 있는 모든 상황을 자세히 상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목자이신 하나님의 손을 잡고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인 이곳 저곳을 함께 다니는 장면을 그리라고 했다. 그는 시편 23편을 묵상하라는 지시를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말씀 명상을 시작한지 여덟 째 되는 날, 목사님을 찾아온 그는 일주일 전의 그가 아니었다. 이제는 어떤 일이라도 해 낼 수 있다는 자신만만한 경영자의 모습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그가 한 일이라고는 오직 시편 23편 말씀 속에서 살아온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이것이 성경말씀의 위력이다.
성경은 어떤 책인데 이렇게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가? 성경을 깊이 묵상하면 왜 치유가 일어나는가?

그것은 성경은 인간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성경은 한마디로 하나님이 고난받고 상처입은 인간을 어떻게 치유해왔는가를 기록해 놓은 치유의 역사책이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과 바빌로니아같은 강대국의 틈 바구니에서 수천년 동안 죽어 없어지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개입이었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이사야30:26)

구약 전체를 흐르고 있는 핵심사상은 양 강대국 사이에서 끊임없는 처절한 수난을 받으면서도 백성의 가슴 한가운데는 메시아가 나타나 그들을 구원해줄 것이라는 소망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메시야의 오심을 향한 굳은 소망을 불어 넣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살아남게 하셨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지금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맬지라도 결국은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우리를 살리신다. 또한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을 싸매시고 치유하신다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면 치유의 역사, 기적의 역사가 일어남을 확신시켜주는 책이 성경이다. 그렇기에 성경을 읽으면 읽는 사람의 마음에 소망이 싹트기 시작한다.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다 해도,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체험하게 되고 결국엔 나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낼 수 있는 소망이 보인다. 성경은 소망을 소나기처럼 불어 넣어서 시들어가는 영을 살려 준다.

절망이 사람을 죽음으로 이끌어가는 사망의 힘이라면, 소망은 생명으로 인도해 주는 치유의 힘이다. 절망과 소망의 힘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사건이 있다. 유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치료자 빅터 프랭클이 들려주는 나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의 유대인 이야기이다. 극도의 환경과 영양실조로 하루에도 수없이 죽어가는 유대인들이 해마다 11월 끝 자락이면 한 가닥 희망에 들뜬다. 그것은 히틀러도 크리스찬이기 때문에 이번 성탄에는 수용소에서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소망을 갖기 때문이다. 이들의 소망은 12월 성탄이 가까워지면서 더욱 강력해졌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도 극심한 환경가운데서도 이 소망이 가슴에서 불붙고 있는 동안은 유대인들의 삶에는 활기가 살아났다. 가스실에 보내지 않아도 자연사할 만큼 병든 사람조차도 어디서 힘이 생기는지 극한의 노동을 감당하고 있었다. 이 성탄 석방의 희망은 12월 25일 저녁까지 이어졌다. 그러다가 25일 밤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절망감 가운데 잠자리에 들어간다. 프랑클이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가장 놀란 것은 25일 밤, 절망을 안고 잠자리에 들어갔던 사람들 가운데 평균 40%의 유대인들이 다음 날 아침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듯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 병인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마음 속에 믿음, 소망, 사랑을 다시 불붙게 해준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자신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일깨워주신다. 또한 우리가 아플 때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도우시고 치유해주심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 오라는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마11:28),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30:11)

그리고 이런 사랑의 하나님, 그리고 우리를 도우시고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기다리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이러한 치유의 세 가지 중요한 면을 가장 분명하게 정리해 준 분은 바울이다. 믿음, 소망, 사랑은 치유의 핵심요인이자 인간의 전인건강을 지탱해주는 세 기둥이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을 때 내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 결과 마음 속의 분노와 시기 질투 등이 싹튼다. 분노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바울은 이미 내다 보았다. 우리가 마음 속에 분노를 느끼는 순간 우리의 신체조직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현대의학은 잘 보여준다. 분노를 오래 품고 있을 때 우리의 정신과 영혼 역시 힘을 잃기 시작하고 결국은 우울증, 불안, 공포, 불면, 정신장애로 이어진다. 이런 병적 현상을 치료하는 것은 사랑의 회복뿐이다.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 우리는 먼저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을 상실한다. 이것은 이웃에 대한 불신으로 발전한다. 세계적인 정신의학자 융은 거의 모든 환자의 공통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을 상실한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이 믿음을 회복하면 모든 환자는 회복되었다고 자신있게 증언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은 심리학자도, 의학자도 아니었지만, 인간의 삶에 있어서 믿음, 소망, 사랑을 상실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가를 알았다.

모든 인간은 정확히 영역을 구분하여 분리할 수는 없지만 영, 정신, 육신의 혼합체이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형상이 있는데, 이것을 우리는 영 또는 영성이라 부른다. 융에 의하면 인간의 영성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생명력이 강해지고 하나님과 멀어지면 생명력이 약해진다. 생명력이 약해질 때 인간은 삶의 기능이 점점 허약해지면서 병든 환자가 된다. 그런데 성경은 어떤 책인가? 인간의 영과 하나님이 만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책이 아닌가! 이것은 치유와 회복의 삶을 불러 일으킨다.

인간은 전인적인 존재로 모든 부분의 핵심을 통제하는 사령부가 있는데 바로 이 사령부는 인간이 유일하게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영성이라고 영성 심리학자 아싸 지올리는 말한다. 성경이 치유와 깊은 연관을 갖는 것은 성경을 읽는 동안 전인건강의 사령탑인 나의 영성이 하나님을 만나 가뭄에 메마른 풀잎이 소나기 후에 살아나는 것 같은 생명회복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경은 하나님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치유 약을 가지고 백성과 개인을 어떻게 치유해오셨는가를 말해주는 치유의 보고이다. 이런 성경을 읽는 동안 나와 하나님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성경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에 나에게도 똑같이 역사하신다는 믿음 가운데, 우리의 치유의 역사는 계속 쓰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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