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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석모] 내 인생을 바꾼 꿈

ch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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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오래 전 일입니다. 이제 그 꿈을 꾼지도 거의 30여년이 가까워오니까요. 교회의 전도사요 대학원 학생이면서 아주 우울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습니다. 의료진들은 나를 마음대로 밖에 드나들 수도 없는 곳에 내려 보냈습니다. 그곳의 환자들은 모두들 무기력하고 정신없고 삶에 지친 모습들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울 속에서도 한 가닥 호기심이 내 마음의 한구석에는 남아 있어서 언제나 마음의 더듬이를 내려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꿈을 생생하게 꾼 것입니다.
고등학교 합격통지서를 받아 들고 시골집으로 내려 왔습니다. 사람은 많지 않은데, 우리 집에는 잔치가 벌어진 듯 들뜬 분위기입니다. 우리 할아버지의 유일한 친 남동생으로, 홍성에서 한약방을 하시는, 그리고 유학자이신 작은 할아버지께서 우리 할아버지와 함께 건넌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들어가 절을 합니다. 칭찬을 들은 듯합니다. 그리고 나왔는데, 집 뒤 산 소나무 숲에서 새소리가 요란합니다. 가보니 커다란 뱀 한 마리가 한 소나무의 높은 가지에 걸려있는 새 둥우리로 기어 올라가고 있습니다. 부부인 듯 보이는 두 마리의 학이 이것을 보고 뱀을 쫓으려 소리를 지르면서 그 주위를 퍼득거리며 날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암놈 학이 깃에 상처를 입고 땅으로 떨어집니다. 얼른 달려가 뱀을 쫓아내고, 암놈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옵니다. 수놈 학도 따라 들어옵니다. 깃을 치료해주고, 아래 헛간 빈 곳에 둥우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 부부 학이 그곳에 알을 낳았습니다. 마당에 서 있는데, 이 부부 학이 내 주위를 돌면서 날다가, 한 놈이 내 손등 위에 똥을 싸고 날아오릅니다. 그 똥을 보니 모두 다섯 덩이입니다. 그런데 그 다섯 덩어리가 각기 색깔이 있습니다. 적·청· 황·백·흑, 오색입니다. 신기하여 그 똥을 바라보다가 잠이 깹니다. 꿈이었습니다.

이 꿈을 꾼 날, 나는 다시 자유스럽게 나다닐 수 있는 입원실로 올라 왔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는 이 꿈을 나름으로 해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때 이미 나는 꿈의 이론 등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었나봅니다. 오늘 날의 꿈 해석으로 치면, 연상같은 것을 할 줄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프로이트도 약간 읽었고, 융도 약간 읽어서 중요개념 정도도 설명할 줄 알았던 듯합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과 합격은 내 인생의 한 분수령이었습니다. 시골 중학교를 나와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한 일은 내게는 가장 큰 인생의 변화였습니다. 그리고 그 합격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감격적인 일 중의 하나입니다. 유학자이신 작은 할아버지의 출현은 그런 의미에서 내가 무엇인가를 성취하였음을 반증하는 듯합니다. 실제로 이 두 분 할아버지 앞에서 소리 내어 웃었다가 크게 혼난 적도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른 앞에서는 입을 가리고 소리 없이 웃어야 한다고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엄하고 높으신 분들인데, 그분들에게 칭찬을 들었으니 무척 기분 좋은 일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집 뒤 소나무 숲 속에서 새소리가 들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새가 위험에 빠지고, 그 새를 치료하여 주었습니다. 실제로 나는 어릴 적부터 뱀이 나무를 기어 올라가는 것을 본 적이 많습니다. 큰 구렁이가 집안 추녀 밑에 꽈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란 적도 있습니다. 뱀은 무서움과 불길함의 징조입니다. 이 뱀을 나는 쫓아냅니다. 그러나 어미 학은 날개를 다치고 말았습니다. 사실 나는 내 눈으로 직접 학을 본 적은 없습니다. 왜가리 정도나 시골에서 보았지요. 그러나 이것이 학인 줄을 아는 것은 그 날개와 몸집이 동양화에서 보아 온 그 새와 똑 같고, 또 뉴스나 영화 등에서 그 생김새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새는 매우 귀한 새요, 또한 동시에 무엇인가 소중한 것의 상징인 듯합니다.
내가 이 꿈 속에서 가장 신기해하였던 것은,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 이후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은, 똥 다섯 점의 색깔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선명한 오색이었을까요. 그리고 그것은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 색 중의 다섯이 아니라, 적청황백흑의 우리 동양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색깔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것이 분명 저 서양의 칠색이 아니라, 우리 동양의 오색이라고 꿈을 기억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려보았었습니다.
이 꿈을 꾸고 난 며칠 동안 나는 입원실에서 내내 이 꿈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나의 꿈 이야기를 듣고 입원실만 바꾸어 주었을 뿐, 더 이상 그 꿈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저 나 혼자 꿈을 기억하면서 이 생각 저 생각 하고 있었습니다. 학의 모습이 흰 옷을 입은 간호사의 모습과 연관되면서 혹시 내가 한 간호사를 사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오색 똥이 혹시 돈을 버는 것을 상징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복권을 사야 되는 것은 아닌지 우스개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꿈속에서의 기분도, 또 꿈을 꾸고 난 후의 기분도 참 좋아서, 내 우울이 극복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의 전조가 아닌지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상담과 꿈과 신경심리를 공부를 하고 가르치는, 요즈음의 내가 이런 꿈을 꾸었다면 나는 곧장 끝까지 연상을 하면서 그 의미를 알아내려고 노력을 하였을 것입니다. 사실 나는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혼자 연상을 하고 있고, 아하 하고 혼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개인적인 일이어서 여기에 쓸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우리가 꿈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가르침들을 주고 있습니다.
나는 꿈이 원망충족이라는 프로이트의 설명이나, 무의식이 의식에게 말하는 통로라는 융의 설명을 수긍합니다. 그런가하면 꿈이 잡다한 정보를 분류 처리하여 마음의 창고를 정리하는 신경작용의 하나라는 현대 심리학적 설명도 그럴 듯하다고 인정합니다. 또한 꿈이 예언적 혹은 상황에 대한 상징적 이해라는 면과 그 자체로 문제해결의 열쇠를 지닌 신기한 정신작용의 하나라는 것도 거부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이런 꿈 -- 즉 내 일생의 한 고비에 꾼 매우 상징적인 꿈, 그리하여 융이 말하는 큰 꿈이라고 할 만한 꿈, 두고두고 생각나면서 내게 때때마다 무엇인가 말하는 꿈 -- 은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인가 말씀해주시는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꿈 박사 요셉이 꾼 꿈도 아마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봅니다. 요셉의 꿈은 그것이 원망충족이었든, 아니면 원형의 현현이었든 상관없이, 그 자체로 그의 일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그 꿈 이야기를 하면서 형제들의 미움을 더욱 더 받게 되었고, 결국은 외국으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신의 꿈대로 형제와 부친을 구하여 절을 받는 일생을 이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요셉이 자기가 어려서 꾼 꿈을 자신의 삶의 고비고비에서 어떻게 해석하였느냐는 점입니다.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당하여 감옥에 갇혔을 때에 그는 자신의 옛 꿈을 기억하면서 무엇을 생각하였을까요? 바로의 꿈을 해석하면서 그는 자신의 어릴적 꿈을 어떻게 이해하였을까요? 성경은 그저 이야기를 풀어나갈 뿐 과거의 꿈을 돌아보며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 의미를 캐보는 과정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인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 옛날 젊은 날의 큰 꿈을 일기장을 들춰보지 않고서도 언제나 기억하면서 언제나 내 삶을 그것에 비추어 반조할 수 있었고, 또 앞으로도 그리할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꿈 속의 학을 영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날갯죽지가 부러진 암컷 학을 상처받은 내 영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내 대학원 전공을 교회사로부터 목회상담으로 바꿨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날 상담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나는 요즈음 동양의 고전들과 철학에서 우리 영혼을 치유하는 귀한 지혜와 자원들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한학자였던 우리 작은 할아버지에게 절하던 꿈속의 나를 보는 듯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부부 학이 나에게 선물한 오색 똥을 기억하면서 나는 예수님의 다섯 상처를 기억합니다. 양손과 양발 그리고 옆구리에 창과 못으로 찔리셔서 이뤄진 그 다섯 개의 상처에서는 분명 피가 흘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피의 색깔이 적청황백흑 이었으리라는 나의 추측은 우주의 구성과 그 운행에 영향을 끼치는 오행의 원리를 넌지시 암시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과학적으로 맞는가, 혹은 심리학적으로 타당하냐의 입장이 아닙니다. 내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것을 객관적으로 보고 이해하고 또 미래를 향하여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위의 꿈을 기억해내고, 그것을 다시 해석하고 혹은 그 꿈이 암시하는 바를 새롭게 이해하고, 나의 생애의 궤도를 서서히 그 꿈의 궤적으로 맞춰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꿈은 분명 내 꿈입니다. 나만이 이해하고 나만이 소유하고 내 인생을 살아가는 그 과정을 통해서만 나 스스로 실현하여 가는 그런 꿈입니다.
나는 누구나 이렇게 자신의 생애를 상징하는 꿈을 꾼다고 생각합니다. 그 꿈은 반드시 신기하거나 상징이 풍부하거나 혹은 기괴한 내용을 지니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남들이 보기에는 시시한 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뇌리에 남아 자신의 삶의 고비고비에 기억나면서 자신의 삶을 재해석하게 해주는 꿈이 누구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는 너무 바빠서 그런 꿈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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