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논단

칼럼

교수논단

게시판 읽기
[정태기] 꿈에 대한 단상

chci

  • 조회수8,129

어머니는 나를 갖기 전 한 꿈을 꾸셨다. 글을 못 읽으셨고, 더욱이 예수님에 대해서도 아무 것도 모르신 분이셨는데 그 태몽에 대해 생각해보면 내가 목회자나 상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징의 꿈이었던 것 같다.
꿈 속에서 어머니는 큰 건물을 보았고 건물 안에는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내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더란다. 그때까지 고향 섬을 한 번도 떠나 본 적도 없었고, 더욱이 그렇게 큰 건물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본적도 만무했었다.
그런데 청년시절 안양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할 때 섬에서 아들 집으로 다니러 온 어머니가 마침 수요일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전에 교회 문턱도 밟아본 적이 없는 어머니가 설교를 마치고 내려오는 내 손을 덥석 잡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것이 니 태몽이여, 오메 태몽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여.” 하신다.
참으로 어머니는 어떻게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먼 훗날의 살아갈 모습을 미리 알 수 있었던 것일까?

꿈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는 주위에서 신통한 꿈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렇다고 모든 꿈이 다 신통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꿈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꿈은 하나님과 깊고 풍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하나의 통로이고, 심리학적인 면에서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중요한 상징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꿈을 통해 인간에게 계시를 들려 주셨다. 지금도 목회 현장이나 상담과정에서 인간의 영적 상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있다면 그것은 꿈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꿈이 오랫동안 기독교에서 무시되어 왔고, 목회에서 사장되어 왔다는 것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꿈의 중요성을 알고 난 후부터 상담과정에서는 내담자와, 목회현장에서는 교인들의 영적 성장이나 치유를 위해 꿈을 다시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오래 전부터 들었다.


꿈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꿈을,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꿈은 답이 아니고 질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한 사람과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이 그와의 관계를 놓고 고민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 속에서 그와 비슷한 갈등을 겪는 꿈을 꾸었다면 이것은 친구와 관계를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중단할 것인가를 말해주는 답이기 보다는 나와 그 사람과의 관계를 이루어 가는 방식이나 태도를 보여주고, 과연 이런 식으로 관계를 이끌어 가는 것이 옳은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꿈이 지시하는 바가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질문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때로 꿈은 병든 관계를 바로 잡거나 새로운 관계를 맺으라고 부르는 초대로 볼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사실 기독교 역사상 꿈이 무시되었던 측면도 이와 연관이 있다. 초대교회는 꿈 해석을 통해 신앙공동체나 개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성취하는데 열심이었다. 이에 반해 5,6세기의 크리스천들은 꿈 해석을 자신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는 도구로 이용하려 했을 뿐, 꿈을 통해 온전한 치유의 삶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의 안일을 지키고 도와주는 일종의 점술로 여겼다. 이 시기에 씌어진 꿈 해석에 관한 글들을 보면 크리스천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걱정없이 살 수 있는가에 더 깊은 관심을 보이며 꿈을 통해 부, 건강, 행운, 성공 등을 보호하거나 미리 알려주는 징조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이러한 현상은 요즈음에도 꿈에 돼지를 보면 복권을 산다든지, 조상이 나타나면 길흉을 점치는 지금의 현실에서도 그 경향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꿈에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의미는 꿈을 통해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나 자신이나 이웃과의 관계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데 있다.

꿈은 치유의 에너지를 품고 있다
꿈은 우리들의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긴장과 갈등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부분 꿈은 늘 갈등과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가득 차 있고 인간사의 상처와 이 상처를 치유해야 할 필요성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잠자리가 사납다 여겨지는 꿈은 다른 어떤 꿈보다 해결해야 할 삶의 문제를 가장 강렬하게 보여준다. 헤어날 수 없는 함정에 빠지거나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쫓기거나 생명이 위태로우면서 도저히 소리 한번 지를 수 없는… 이처럼 반복되어 나타나는 꿈은 치유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내적인 갈등을 반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불안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꿈 해석을 통해 치유에너지를 사용하는 한 방법을 살펴보자.

꿈의 사용: 불안한 꿈 다시 꾸기
뒤숭숭하고 불안한 꿈을 꾸었을 때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한번 꿈을 고쳐봄으로 그 속에서 치유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만일 꿈에서 자동차가 부서졌다면 삶 자체가 그렇게 상처를 입었다는 뜻이다. 이럴 때는 꿈에서 곧바로 일어나지 말고, 부서진 차를 정비소에 가져가 수리를 한 다음 고친 차를 몰고 신나게 달리다가 꿈을 깨보는 것이다. 혹은 꿈속에서 집이 무너져 내려 엉망이 되었다면 즉시 일어나지 말고 집을 다시 수리하고 깨끗한 집으로 새 단장을 한 뒤, 잠시 동안 기분 좋게 살다가 눈을 뜨고 일어나 보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꿈을 수정하여 다시 기록하는 기술은 우리가 파괴적인 습관에 물들어 있거나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심한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리의 영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지시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파괴적인 습관과 기억은 대부분 무의식 깊이 묻혀있다. 따라서 꿈을 통하여 이 습관과 기억을 의식세계로 떠올리고 나면 자신의 삶의 습성을 보다 분명히 인식할 수 있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불안한 꿈을 꾸었다고 해서 곧 바로 기분 좋은 감정으로 바꾸는 꿈을 꾸고자 노력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먼저 불안이 갖고 있는 충분한 이유, 그 상처를 충분히 들여다 보아야 한다. 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들으며, 어떤 문제가 자신의 감정을 가장 사로잡고 있는지, 먼저 우리에게 어떤 습관이나 상처가 있는지를 알아야,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처나 문제가 자신의 감정을 흔드는 대로 얼마동안 자유롭게 놓아둘 필요가 있다.
불안한 꿈은 우리의 성격 중에서 치유하고 고쳐야 할 부분을 알려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치유와 변화가 보다 쉽게 일어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불안한 꿈을 수정하여 치유에 도움이 되도록 다시 바꿔보는 것은 바로 이러한 노력의 하나이다.

먼저 꿈의 상징 언어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곰곰이 살피고 나서, 파괴적인 꿈이 자신의 감정을 마음대로 뒤흔들도록 얼마동안 놓아둔다. 그 후 치유에 도움이 되도록 꿈을 수정하여 본다.
우선 상상력을 동원하여 꿈으로 다시 들어가 고통스러웠고 마음이 힘들었던 부분에 이른다. 그리고 종이에 그 나머지 부분의 꿈을 수정하여 다시 써본다. 행복한 결말에 이르도록 마음내키는 대로 꿈의 내용을 고치고 바꾼다. 그리고 자신의 꿈 자아뿐 아니라 깨어있는 자아도 행복한 결말을 위해서 어떻게 행동과 감정을 바꾸어 갈 것인지 적어 본다.
이렇게 하다보면 우리는 꿈과 꿈 해석을 통해 자신이 걸어야 할 삶의 여정과 그 궁극적인 목적을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꿈은 여전히 신비
살다보면 친해지고 잘 알면 인생 살기가 한결 수월한 것이 있다. 그 중에 꿈과 친해지는 것도 지혜로운 친구를 얻는 든든함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꿈을 잘 알고자 해도 꿈이란 역시 우리에게는 그 신비함을 다 드러내지 않는 미지의 세계이며, 신비로운 것 만큼 그 안에는 놀라운 보물로 가득 차 있는 세계이기도하다.
허나 그 보물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이 아니던가!

게시판 목록이동
이전글 내 인생을 바꾼 꿈
다음글 분노를 통해 나를 들여다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