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게임(Because Game)”이라는 것이 있다. 상담자가 어떤 문장을 주면, 내담자는 그 문장에 대해 왜 그 문장이 자기에게 호소력이 있는지 상담자에게 설득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담자가 “그는 다른 사람을 찾을지도 모른다.”라는 문장을 주면, 내담자는 왜 그런지에 대해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나 한테 질려서, 그가 바람둥이니까, 내가 뚱뚱하니까, 내가 학력이 짧으니까 등”내담자는 그가 자기에게서 떠나려고 하는 나름대로의 타당한 이유를 대야만 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에는 어쩌면 그렇게 말한 사람의 초기 경험, 특별히 유기(버림받음)와 관계된 단서가 잡힌다.
“나는 항상 불리한 위치에 있다.”라는 문장이 내게 주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왜냐하면 나는 부모한테 물려받은 게 없으니까,” “왜냐하면 나는 여자니까,” “왜냐하면 나는 신체적 결함이 있으니까”등의 이유를 대서 “그래서 나는 항상 불리하게 느낀다.”라는 등의 대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 대답에는 어렸을 때부터 의미 있는 타자(내게 영향을 미친 부모나 형제, 교사, 친구 등)와의 대상관계 속에서 배운 불신이나 상처 입을 것에 대한 기대가 숨겨져 있다.
이런 게임을 통해서 우리는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타인에 대해 생각하는 인지도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우울한 사람들은 자신, 자신의 환경,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의 왜곡된 방식으로 사건들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베크(Aaron Beck)에 의하면, 우울한 사람은 부정적인 방식으로 사실들을 잘못 해석하고, 어떤 상황의 부정적인 면에만 초점을 두며,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기대를 갖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특징적인 점은, 귀인(attribution)의 습관이 탄력적이지 않는 점이다.
귀인이란 말은 결과의 원인을 ~에 돌린다는 뜻으로, 자신이나 타인이 한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그 원인을 추론하는 과정을 말한다. 내가 어떻게 귀인 했느냐에 따라 귀인의 결과는 나의 정서와 행동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사라손(Irwin Sarason)에 의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 방향의 귀인을 한다.
a) 내부적-외부적 귀인 내부적 귀인(internal attribution)은 행위자의 내부적 요인(성격, 능력, 동기 등)에 그 원인을 돌리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외부적 귀인은 행위자의 밖에 있는 요소(환경, 상황, 타인, 우연, 운 등) 탓으로 돌리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b) 안정적-불안정적 귀인 안정적 귀인(stable attribution)은 그 원인이 내부적인 것이든 외부적인 것이든 시간이나 상황에 상관없이 비교적 변함이 없는 원인(성격이나 지적 능력)에 돌리는 경우를 의미한다. 반면 불안정적 귀인은 자주 변화될 수 있는 원인(노력의 정도나 동기)에 돌리는 경우이다.
c) 전반적-특수적 귀인(global-specific attribution) 이 차원은 귀인요인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한정되어 있는지의 정도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이성에게 거부당한 일에 대해서 성격이라는 내부적-안정적 귀인을 한 경우에도 그의 성격 전반에 귀인할 수도 있고 그의 성격 중 성급하다는 일면에만 구체적으로 귀인할 수도 있다. 수학 과목에서 성적이 나쁘게 나와 자신의 능력부족에 귀인할 경우, “나는 머리가 나쁘다”고 일반적인 지적 능력의 열등함에 귀인할 수 있고 “나는 수리능력이 부족하다”고 구체적인 지적 능력에만 귀인할 수 있다.
자신이나 타인의 행동에 대해서 그 원인을 어떻게 귀인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감정과 행동이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방어적 귀인 (defensive attribution)을 하는 경향이 있다. 즉 좋은 결과는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나쁜 결과는 외부적 요인에 돌리는 경향(상황탓, 남탓, 조상탓)이 있다. 그러나 우울한 사람들은 이와는 반대의 경향이 나타난다. 우울증에 취약한 사람들은 실패 경험에 대해서 내부적, 안정적, 전반적 귀인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귀인양식은 우울증의 세 가지 측면과 관련되어 있다. 실패경험(혹은 부정적 생활사건)에 대한, a) 내부적-외부적 귀인은 자존감 손상과 우울증의 발생에 영향을 미치며, b) 안정적-불안정적 귀인은 우울증의 만성화 정도와 관련되어 있고, c) 전반적-특수적 귀인은 우울증의 일반화 정도를 결정하게 된다.
이 세 가지 측면을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실패경험(성적불량, 사업실패, 애인과의 결별 등)에 대해서 내부적 귀인(능력부족, 노력부족, 성격적 결함 등)을 하게 되면, 자존감에 손상을 입게 되어 우울감이 증진된다. 그러나 같은 실패경험이라도 외부적 귀인(잘못된 시험문제, 전반적 경기불황, 애인의 변덕스러움 등)을 하게 되면 자존감의 손상은 적게 된다. 즉 실패한 결과가 자신의 부정적 요인 때문이라는 평가를 하게 될 경우에만, 자기책망을 통해 자존감이 상처를 입게 되어 우울증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패경험에 대한 안정적 귀인이 우울증의 만성화와 장기화에 영향을 미친다. 실패경험을 능력부족이나 성격적 결함과 같은 안정적 요인에 귀인하게 되면, 무기력과 우울감이 장기화될 수 있다. 왜냐하면 능력이나 성격은 쉽게 변화될 수 없는 지속적 요인이며 이런 요인에 문제가 있다면 부정적 결과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패를 노력부족 등과 같은 일시적인 불안정적 요인에 귀인하게 되면 일시적으로 무기력할 수는 있으나 곧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실패경험에 대한 전반적-특수적 귀인은 우울증의 일반화에 영향을 미친다. 즉 실패경험을 전반적 요인(전반적 능력부족, 성격전체의 문제 등)에 귀인하게 되면, 우울증이 전반적인 상황으로 일반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학과 관련된 능력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지적 능력의 부족 때문이라고 성적불량에 대해서 전반적 귀인을 하게 되면 수학시험뿐만 아니라 모든 과목의 시험에서 무기력한 행동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처럼 전반적 귀인은 무기력함과 우울증상이 여러 상황에 일반화되어 나타나도록 만든다.
이렇듯 우울한 사람들은 실패경험에 대해서 지나치게 내부적, 안정적, 전반적 귀인을 하는 반면, 성공경험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외부적, 불안정적, 특수적 귀인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귀인방식을 우울 유발적 귀인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귀인방식은 비현실적으로 왜곡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귀인오류라고 할 수 있다. 우울한 사람들은 부정적인 삶의 경험이나 사건에 대해 습관적으로 그 원인을 스스로에게 돌리는 버릇이 있다. 이런 습관이 굳어지면 질수록 그 사람의 인생 태도는 자율적이지 못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피해의식이 강해 매사에 방어적(defensive)이 된다.
우울증 귀인이론에 비쳐볼 때, 부정적 사건이나 나쁜 결과를 모두 자신의 탓으로만 짊어지려는 지나친 양심적 태도는 정신건강에 좋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부정적 결과에 대해서 조금은 남 탓으로 또는 상황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지나친 책임감과 양심기제를 가진 사람이 우울해지기 쉽다는 말이다. 이러한 우울 유발적 귀인을 계속하게 되면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만 많은 삶이 되어 우울증으로 발전될 수 있다. 우울증의 귀인이론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각자의 몫만큼 책임을 지는 공정한 귀인이 바람직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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