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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호] 자기 노출의 용기

ch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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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치유를 위한 영성수련에 참가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적절한 정서나 부적응 행동의 원인이 되는 자신의 어려운 과거를 탐색하고 그것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말하는 부담감에 직면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자아는 위협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간혹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자신과 만나게 된다 “그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아!”그런데 그렇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가? 그것은 자아가 위협을 받을 때 나타내는 자기방어라는 자연적인 현상에 역행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적당한 선까지만 말하던 일상적인 삶의 양식과는 전혀 다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낯설고 부담스러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신체적인 질병의 치유이든, 정신적인 장애의 치유이든, 모든 치유에는 공통된 원리가 하나 있다. 그것은 자신의 아픈 상처를 드러내는 자기노출(self disclosure)의 원리다. 몸에 부상을 입어 병원에 간 사람은 외과의사에게 자기의 부상 상태를 보여 주어야 한다. 정신적인 장애로 정신과 의사나 심리치료자를 찾은 사람은 그들에게 자신의 장애 상태를 드러내야 한다. 왜냐하면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잘못을 용서받기 위한 회개의 과정에도 적용된다. 회개라는 말속에는 하나님 앞에 나의 잘못과 아픔을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노출은 회개와 용서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다. 이러한 원리는 내면치유를 위한 영성수련의 과정에서도 그대로 해당된다. 참가자는 그 자리에 임재해 계시는 하나님과 서로의 치유를 돕는 모든 참가자들 앞에서 자신의 상처와 그 상처의 원인이 되었던 과거의 어두운 사건들을 진술한다.

내면치유를 위한 영성수련에 참가한 사람들이 나타내는 전형적인 반응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영성수련에 참여하는 것이 부담이 되어서 잠을 못 잤다는 것이다. “나는 어제 잠을 못 잤습니다. 이번 영성수련에서 무엇을 내놓고 치유 받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이곳에 오면서 계속 그 생각만 했습니다.”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이미 영성수련에 참가해 본 경험이 있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영성수련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둘째는 모든 참가자들이 자기의 이야기를 꺼내는데 매우 주저하며 그 순서를 뒤로 미루는 것이다. 영성수련을 인도하는 인도자는 첫 시간에 흔히 이렇게 시작한다. “자, 이제 누구시든지 원하시는 분부터 자유롭게 시작해 주십시오. 자신이 어떤 도움을 받기 원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성장과정이 어떠했는지 이야기 해 주시기 바랍니다.”그러면 잠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대부분 참가자들은 누군가가 먼저 시작해 주기를 바라면서 주위를 살핀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이야기를 꺼내면 안도의 표정을 짓는다. 셋째는 언제 자신의 이야기를 내어놓을지 망설이고 기다리면서 너무나 힘들어하는 것이다.“언제 내 이야기를 할까 기다리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말이 생각났구요.”이 사람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자기노출의 고통과 두려움을 매맞는 것에 비유했다. 그것은 그만큼 자기노출이 쉽지 않으며 용기가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치유는 그렇게 자기노출이라는 부담스럽고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자기방어의 벽을 허물고 적당한 선까지만 말하던 일상적인 삶의 양식을 바꿔야한다. 상담과 정신치료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상담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내담자의 저항과 회피의 문제에 부딪힌다. 내담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이야기의 핵심으로부터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저항은 내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서 뚜렷해지는 자신의 문제에 대한 자기 인식과 통찰의 과정을 피하려고 하는 자기 방어적인 노력이다. 그것은 거의 모든 내담자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흔한 현상이다. 자기노출은 이런 자기 방어적인 노력을 포기한 행동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치유는 치유를 위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대가는 자신의 어둡고 아픈 과거를 기억하고 그것을 여러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말하는 고통과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이다. 자아가 위협을 받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고통과 두려움에 맞붙어 싸울 수 있는 용기가 없이는 치유를 경험할 수 없다. 치유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치유에는 공짜가 없다. 자기의 내면세계를 공개하는 고통과 두려움에 직면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정신과 의사이며 “끝나지 않은 길(The Roadless Traveled)”이라는 책을 써서 널리 알려진 스코트 펙(Scott Peck)은 이렇게 말했다.“정신치료를 받는 것은 대단히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행동이다. 사람들이 정신치료를 받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돈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의 부족 때문이라는 그의 말은 매우 고무적으로 들린다. 정신치료는 물론, 기독교의 회개와 용서, 그리고 내면치유를 위하여 우리가 지녀야 할 중요한 태도중의 하나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용기를 내는데 도움이 되는 글이 있다. 이 글은 오래 전 인간관계 능력의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석했던 사람이 어느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글에 “일곱을 참는 지혜 중에서”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아무 모험도 하지 않는 이들은 그 순간의 고통이나 슬픔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배울 수 없고, 느낄 수 없으며, 변화될 수 없고, 성장할 수 없으며, 사랑할 수 없고, 진정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자기로부터의 소외현상에 대해서 지적한 시드니 쥬라드( Sidney M. Jourard)는 그의 책 “투명한 자아(The Transparent Self)”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인간은 두 개의 자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하나는 내면 속에 있는 진정한 자기(real self)이고 다른 하나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적인 자기(public self)이다. 우리는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무엇이든지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웃고 싶으면 웃고, 울고 싶으면 울고,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좋으면 좋다고 말하고…. 그러나 그런 행동이 부모와 어른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처벌을 받거나 혹은 인정되고 칭찬을 받는 강화의 법칙에 따라, 우리는 진정한 자기를 숨기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적인 자기를 나타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숨기고 남에게 인정받고 칭찬 받기 위한 가식적인 자기를 형성 발달시켰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자기소외의 현상이다.

영성수련에 참가해서 자기를 노출하는 것은 그와 같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거짓되고 공적인 자기의 가면을 벗고 내면 속에 있는 진정한 자기를 드러내는 것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노출은 진실되고 정직한 행동이다.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그렇다. 치유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속이는 흔한 형태중의 하나는 자기에게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아픔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아프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치유 받을 것도 없고 할 이야기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함으로써 그는 자기로부터의 소외현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스코트 펙의 말에 따르면 치유는 진실성의 게임( truth game) 혹은 정직성의 게임(honesty game)이라 할 수 있다. 치유는 우리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에 맞서는 것이며 우리 안에 있는 정직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자기노출은 치유를 위한 기본적인 원리이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지만, 그것은 강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노출은 강요될 수도 없고 강요되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와 선택에 맡겨져야 한다. 왜냐하면 치유는 자발적인 동기가 없이는 어려운 일이며, 또한 치유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결국 치유받는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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