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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기] 예수를 만난 사람

ch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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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만난 사람

아내를 성지순례 여행에 보낸 한 남편이 있다. 그는 몸도 시름시름 아픈데다 그럭저럭 꾸려가던 사업도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 와중에 그간 고생만 시킨 아내에게 성지순례 여행을 보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그 상황 속에서 주님의 임재하심을 강하게 느꼈다. 아내가 없는 20여 일 동안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가정의 귀중함과 고마움을 새삼 느낄 수 있었고 그때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생생하게 역사하시는 주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는 어려운 때에도 이렇게 함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신비하기만 했다.

나이 50줄에 들어서야 예수를 알게 된 청소부가 있었다. 그는 그 나이가 될 때까지 교회 문턱도 밟아본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를 따라 교회에 다녔고, 고교 시절에는 학생회 회장을 맡기까지 했다. 그는 자랑스런 아들이 반듯하게 자라가는 재미에 하루 종일 쓰레기와 씨름하면 서도 고달픈 줄을 몰랐다. 가진 것은 없어도 남부러울 것 없는 팔자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 아들이 간간이 들려주던 예수님 이야기, 그러나 그는 그 얘기가 배부르고 등 따신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긴 중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미아리 고개를 넘어오던 아들이 과속 트럭에 치어서 즉사하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아들이 대문을 벌컥 열어 제치며, 아버지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라고 인사할 것만 같았다. 멍하니 먼 산만 바라보는 날들이 흘러갔다. 그 다음에는 술로 자신을 달래려고 했다.

그렇게 성실하게 교회를 위해 봉사했는데. 우리 아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생떼 같은 아들 대신 차라리 이 늙은이를 데리고 갈 일이지

아들을 죽에 내버려 둔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미웠다. 그래서 그는 하늘에 대고 악을 쓰며 삿대질을 해댔다. 그러나 하늘은 여전히 무심하기만 했다.

그는 목사를 찾아가 멱살을 잡고 갖은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러나 아무리 발악을 해대도 그의 마음속 깊이 가라앉아 버린 분노와 억울함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얼마 동안 아우성을 치던 그는 마침내 목사를 끌어안고 통곡을 했다. 그는 결국 실신을 하고 말았다. 목사는 앙상하게 뼈만 남은 그를 안방에 데려다 눕혔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주일예배 시간에 설교를 하던 목사는 뒷자리에서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는 소년의 아버지를 발견하였다. 예배가 끝나고 맨 마지막에 나오던 소년이 아버지가 목사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들이 믿었던 예수를 지가 대신 믿어볼랍니다.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아들이 떠난 지 수년이 지난 오늘, 소년의 아버지는 무척 안타까워한다.

이렇게 좋은 예수님을 아들이 살았을 때 믿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찬송을 부르며 어깨를 들썩인다.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
세상에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네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

이렇게 예수를 만나 삶의 새 지평을 연 사람들은 이밖에도 많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좋은 환경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 절망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났다. 그들은 고난의 수렁에서 아름다운 연꽃을 건져 올린 것이다. 사업이 망하면 자살을 하는 사람이 있다. 때로는 식구들까지 다 데리고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고난의 된서리를 맞은 후에라야 더욱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이들의 사전에는 패배한 삶이란 없다. 밑지는 삶이란 단어도 있을 수 없다. 예수가 주는 참 자유를 만끽한 사람을 감옥에 넣어 보라! 그는 감옥 안에서도 무한한 자유를 누릴 것이다. 참된 자유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더 크게 열린 세계를 경험케 한다. 한 해가 저물어 갈 때 지난 세월들을 묵상해 보라. 누구라도 아쉬운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은 팔자 소관을 탓하고 자신의 박복을 탄식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만난 감격으로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모든 것을 잃고도 겸손히 머리 숙여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지혜를 보여준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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