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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기] 부부사랑은 파도를 넘어

ch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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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사랑은 파도를 넘어

4년 전쯤 아는 사람의 결혼식 주례를 해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뒤 얼마 안 있어 신부가 나를 찾아와 단호한 목소리로 남편과 갈라서겠다고 한다. 이유인즉 남편한테 손찌검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 부부는 결혼 후 3년 동안은 행복했다고 한다. 그런데 3년이 지나자 남편의 태도가 점점 시들해지면서 말다툼이 잦아졌다. 며칠 전에도 심하게 말다툼을 했는데,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상황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더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면서 사랑이 식어버린 결혼은 아무 의미도 없고 지옥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어느 정도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자 나는 조용히 말을 건넸다.

지금까지의 이야기에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랑이 식어버린 결혼생활은 무의미한 것이지요. 또 식은 감정으로 서로를 질시하는 결혼생활도 아마 지옥의 괴로움과 같겠지요. 그 같은 결혼생활은 서로를 파괴하기 때문에 지속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말에 여인은 흠칫 놀라는 듯했다. 목사가 선뜻 이혼에 동의를 해주는 것이 생소했거나, 아니면 홧김에 한 소린데 정말 이대로 결혼생활을 끝내 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일말의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의도는 다른 데 있었다. 그녀에게 사랑과 결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은 남편과 참 사랑을 아직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당신들은 대부분의 부부들이 참사랑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정 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겪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이 진정한 사랑, 참 만남에 도달하기까지에는 수많은 고비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사랑은 여러 고비와 어려움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은총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녀는 그 과정 중 첫 고비를 만나 힘들어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고린도전서 13장 4-7절을 읽었다. 바울은 참 사랑이 무엇이고, 참 만남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고 있었다. 바울은 사랑이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바울은 만남에는 반드시 어려운 고비가 오는데 이 고비를 참고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참 사랑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처음 만나서 확 타오르는 하룻밤의 풋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고운 점뿐만 아니라 미운 점까지도 포용하는 곰삭은 사랑을 말한다. 이것은 진득한 기다림을 필요로 하는 사랑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만남이 이루어지면 그 순간부터 두 사람은 사랑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긴 여행을 떠나는 여행객과 같다. 두 사람은 어느 지점에서 정지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사랑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여 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는 평탄한 대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꼭대기를 오르기도 하고 가파른 낭떠러지를 만나기도 하며, 때로는 망망한 바다와 세찬 물줄기를 건너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나 이 과정을 참고 견디어야만 진정한 사랑의 나라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처음 만나면 호기심을 느낀다. 이런 호기심이 없으면 만남의 관계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다름에는 서로를 확인하는 단계가 시작된다. 이러한 확인 작업은 말이나 얼굴 표정, 눈빛, 행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서로를 탐색하는 과정이 끝나면 사랑이 서서히 불붙기 시작한다. 시간이 갈수록 두 남녀의 사랑은 뜨거워진다. 사랑이 뜨거워지면 상대의 약점은 보이지 않게 된다. 한참 연애할 때에는 애인의 발뒤꿈치까지도 사랑스럽게 보인다. 이렇게 사랑이 불붙는 시기를 애정기라고 부른다. 서양 사람들은 이 시기를 허니문, 즉 꿀맛 같은 시기라고 부른다. 우리 나라에서는 깨가 쏟아지는 시기라고 표현한다.

이런 젊은 시절의 꿈결 같은 시간들이 백발노인이 되어서도 지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정기에 사랑의 깨를 다 쏟아버리고 만다. 시골에서 깨를 털어 본 사람은 이 말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베어 낸 깻단을 가을볕에 잘 말려서 막대기로 툭툭 털어 내면 깨가 한꺼번에 다 쏟아져 나온다.

인간의 사랑도 이와 같다. 물 불 가리지 못하던 애정기가 지나면 서서히 배우자의 실망스러운 모습들이 드러나 보이기 시작한다. 저런 사람과 한평생 살을 맞대고 살아갈 일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이때가 바로 결혼생활의 권태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참 깨가 쏟아지는 애정기에는 그 사랑의 깨가 일생 동안 쏟아질 것이라고 착각한다. 즉, 볼품없는 상대의 모습일지라도 일생 동안 변함없이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은 것이다. 그러나 짓궂은 운명은 권태기라는 과정을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 설치해 놓고 즐거워한다. 이 권태기에 자칫 잘못하면 소중한 사랑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렇지만 이 권태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면 진정한 부부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 애정기의 좋게만 보이던 모습, 밉상스럽게만 보이던 권태기 시절의 모습이 부부애라는 큰그릇 속에 용해되어 아름다운 사랑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배우자의 참 모습은 권태기에서 쏟아지는 여러 번의 소나기가 지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알 수 있다. 어둠 뒤에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듯 상대방의 새로운 모습을 새로운 감동으로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참 사랑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많은 부부들은 이런 참 사랑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결혼 생활을 지루하게 지속하거나 파경으로 끝내고 만다. 이유는 권태기에서 상대방에게 실망을 느끼고 대화를 포기해 버린 데 있다. 관심을 밖으로 돌려버린 데에 그 탓이 있는 것이다.

사랑은 감정에서 출발하지만 감정만으로는 완전해지지 않는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지루하고도 힘든 여정이다. 수십 수백 번의 소나기를 지나고 세찬 파도를 넘은 자만이 쟁취할 수 있는 패러다이스인 것이다.

부부가 참 사랑을 이루어 가는 동안 가장 힘들 때 사랑의 생명력을 얻어내는 길이 있다. 남편이나 아내 누구든지 다음과 같은 명상수련을 익힐 수만 있다면 결코 사랑의 여정에서 낙오하는 일은 없으리라.

명상수련

흙탕물이 고요하면 맑아져서
밤에 달이 또렷이 비친다.

정신을 고요히 하라. 생각의 진행을 멈추라.
생각을 직접적으로 멈출 수는 없다.
뭔가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그 길이다.

그러니 호흡에 집중하라.
호흡을 조절하거나 심화하려 들지 말라.
그냥 호흡을 알아차리기만 하라
그것이 낳는 움직임을 알아 차리라
아무리 미미한 것일지라도
몸 안에
허파 속에
횡경막에

또는 들이쉼을 의식하라
그리고 내쉼을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속으로 말해도 좋다
지금 나는 숨을 들이쉬고 있다
지금은 내쉬고 있다

들이쉼과 내쉼의 차이를 의식하라
시간의 차이를
온도의 차이를
흐름의 부드러움과 거칠음의 차이를
생각하려 들지 말고
그냥 의식하면서 주시하라
강물의 흐름을 또는 바다의 움직임을
또는 하늘을 날아가는 새의 길을 지켜보듯이
호흡을 관찰해 보면
어느 두 호흡도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리라
마치 어느 두 사람의 얼굴도 다르고,
해가 넘어가는 어느 두 하늘도 아주 같지는 않듯이.
미처 이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직 제대로 못 보고 있는 것이다.
흙탕물이 가라앉으면
호흡마다가 역력히 다르고 독특하리라.

자신의 호흡을 지켜보는 것은
강물을 바라보는 것만큼 매혹적일 수 있다.
그것은 정신을 가라앉히고
지혜와
침묵과
신성함에 대한 느낌을 일으킬 수 있다.

그냥 바라보기만 하라
그러면 선명해지리라.
흙탕물이 투명해지고
그리고 너는 보게 되리라.

이런 수련을 자주 하다보면 어느 순간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을 이
해하게 되리라.
용서하게 되리라. 사랑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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