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사역에서의 영성훈련
“너 이스라엘이 너희 하나님 야훼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그가 보기에 바르게 살며 그 명령을 귀에 담아 모든 규칙을 지키면, 애집트인들에게 내렸던 어떤 병도 너희들에게는 내리지 아니하리라. 나는 야훼, 너희를 치료하는 의사이다.”(출에굽기 15, 26)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누가복음 4, 6-8)
인간의 내면속에는 강렬한 영성욕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치유의 능력과 삶의 힘을 더해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자 하는 열망이지요.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는 상실과 비극, 실패와 장애중에서도 삶의 의미와 희망을 주는 생명력 넘치는 신념을 갖고 싶어 합니다.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은 정의와 사랑과 성실속에 중심을 두어 인격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책임있게 살고 싶어 합니다. 영을 소유한 인간은 초월적인 자아의 지혜와 창조성과 사랑을 발견하고 개발하려는 바램이 있습니다. 자연의 일부인 사람은 생명계와 놀라운 생명줄로 얽혀 하나라는 사실을 더 깊이 깨닫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창 1, 26-27)은 슬픔과 죄책, 분노와 적개심, 그리고 자기거부 같은 고통스런 상처를 치유해주는 영적자원을 개발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영성추구는 그리스도교 역사에 있어서 언제나 있어 왔습니다. 이 흐름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불안으로부터 자유롭기를 희망합니다. 그들은 한편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리려면 충분한 물질이 있어야 한다고 여겨 노심초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덕적 성취의 목표를 세우고, 그곳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판단하며 불안해 합니다. 관계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불안해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해 합니다. 한편 인간은 적개심으로부터 해방되어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분노가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한 진정한 평화를 맛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나 이웃과의 잘못된 관계형성에서 오는 분노는 인간을 괴롭힙니다. 이런 분노는 불공평함 때문에 자주 발생합니다. 사람은 불안이나 적개심으로 부터 해방되기 위해 힘, 즉 소유와 권력을 추구하지만 다시 불안에 빠지고 맙니다. 인간을 불안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영성입니다. 영성추구야말로 인간을 불안과 적개심으로 부터 자유하게 합니다. 21세기를 3년 앞둔 오늘의 상황은 영성을 더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기술공학이 밝아짐에 반비례하여 인간의 내면세계는 점점 어두워져 가기 때문입니다. 반가운 것은 기계론적 세계론이 붕괴되고 유기체적 세계관이 발아하여 존재들간의 상호관계성의 싹이 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아와 빈곤, 그리고 심각한 공해 등으로 인해 생명의 존엄성을 현대인들이 각성하기 시작합니다. 탈근대성(post-modenism)의 출현으로 서구의 이성에 의존하는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감성, 직관, 초월경험, 다양성 등을 강조하게 되면서 영성추구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가장 심오한 욕구는 자신의 초월적인 잠재력, 즉 영성의 자아를 개발하는 일입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초인간적이고 초월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다 하나님, 곧 거대한 영성의 실체와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자기를 ‘실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영성의 실체와 좀더 친밀해지고 관계를 맺고 체험한다는 것은 모든 창조의 근원과 연결되는 일입니다.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내면에 쌓인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영성이란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정신분석가들에게 있어서 영성의 핵심은 자아주변에 혹은 자아내면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내면세계 여행을 강조합니다.
내면 세계는 시공간의 제한이 없는 무한의 처소, 속박과 구속이 없는 자유의 세계, 나와 너, 네 것과 내 것의 구별이 없는 초월의 장소, 하나님의 영과 직결되어 있어 신비의 영역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영성은 믿음과 사랑과 같은 덕행들로 인해 작용하는 은총의 내적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는 성품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가는 것이지요.(빌 2, 5-7; 엡 4, 13)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출발점이고 길이고 표준이며 목표입니다. 상담과 가정사역자들에게 있어서 영성은 기도와 묵상과 예식과 성경연구와 영성 자료를 통해 조직적으로 삶을 깊이있게 개발하는 것이요 그 영성을 표현하여 찬양과 감사로 하나님과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공동체속으로 전달하는 삶입니다. 결국 기독교 영성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영성신학의 뒷받침을 받으며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제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 삶에 맺게 하시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마틴루터나 죤 칼빈, 그리고 칼 바르트 같은 말씀의 영성은 그리스도의 현존을 경험하게 합니다. 본 훼퍼나 마더 테레사, 같은 그리스도의 제자직을 몸으로 실천하는 제자직의 영성은 작은 그리스도가 되게 합니다. 윌리엄 시모어, 죠지 폭스, 김익두, 길선주 같은 오순절의 영성은 강렬한 성령임재 경험으로 신유, 방언, 기사, 이적을 체험하게 하고 교회를 역동적으로 변화시킵니다. 토마스 머튼이나 미이스테르 엑하르트, 성 프란시스, 같은 수도원 영성은 청빈, 묵상, 기도, 노동을 통해 그리스도와 일치를 경험하게 합니다.
치유목회는 어린이들에게는 희망, 의지, 목적 그리고 자신감이라는 덕목을 개발하게 합니다. 치유 사역은 청소년들에게 자아확립과 충실성이라는 덕목을 획득하고 성인들은 사랑, 돌봄 그리고 지혜라는 덕목을 성취하게 합니다. 이런 모든 덕목들은 상호 의존적이지요. 모든 사람에게는 개발되지 않은 영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인 대부분은 이 영성에서 흘러 나오는 엄청난 힘을 조금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영성은 축배를 들어야 할 기쁨의 신비입니다. 치유목회는 영성을 개발하여 병든 부분을 회복시키고 전인건강을 성장시켜 나가는 살림의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치유를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요한복음10:10이하) 이 분을 따르는 이들은 생의 단계단계마다 자신이 지닌 모든 영성의 가능성을 십분 활용하여 행복하게 살아 갑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고자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분투합니다. 나아가 자신뿐 아니라 이웃 속에 묻혀 있는 영성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데에도 투신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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