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상담자 - 예수
한성열 │본원 교수, 고려대 교수
자기실현 시대의 치유목회
21세기 한국 목회에서 가장 역점을 두어야하는 것은 상담을 통한 “내면 치유”이다. 이점은 한국 사회의 경제적 수준과 사회적 여건이 단지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를 뛰어넘는 고차적인 욕구가 강하게 나타날 만큼 발전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세기 심리학에 큰 공헌을 한 매스로우(A. Maslow)에 의하면 사람의 욕구는 ‘생존의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과 사랑의 욕구’, ‘존중의 욕구’, 그리고 ‘자기실현의 욕구’의 5단계를 거치면서 발달해 가는데 보다 원초적인 단계의 욕구가 어느 정도 만족이 되어야만 그 다음의 고차원적인 단계의 욕구가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배고픔과 목마름, 수면 등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가 해결이 되어야만, 안정과 안전, 의존과 상호, 법과 질서에 대한 욕구, 즉 안전의 욕구가 나타난다. 이 두 가지 기본적인 욕구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면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사랑하고 사랑 받으려는 소속과 사랑의 욕구가 강해지고, 이 욕구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면 자기 스스로를 존중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존중과 인정을 받고 싶은 존중의 욕구가 나타난다. 이 욕구들이 만족할 만큼 해결이 되면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보람을 느끼려는 자기실현의 욕구가 나타나게 된다.
자기실현을 하기 위해 사람들은 관심을 자신에게 돌린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를 해결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시키려고 한다. 이들은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교회를 원하고, 자신에게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는 목회자를 필요로 한다. 앞으로 한국 목회가 “상담”과 “내적 치유”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님의 사역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을 치유해 주고, 각 사람의 잠재력을 실현시켜주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얻었으며,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얻었다. 사실 예수님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상담자이시다.
바람직한 상담자의 자세
현재 상담 분야에는 다양한 이론들과 치유 방법들이 있다. 이들은 서로 자신의 이론과 치유 방법이 제일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점을 입증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특정한 상담의 이론이나 치유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상담자의 자질이나 태도가 상담의 효과에 더 깊은 상관이 있다. 즉, 상담자가 사용하는 이론이나 방법보다 상담자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
20세기 상담심리학 분야에 가장 큰 공헌을 한 로저스(C. Rogers)는 바람직한 상담자의 자세를 세 가지로 요약하였다. 이 세 가지 자세를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1. 상담자는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느끼고 진실하게 표현하여야 한다. 상담자가 갖추어야 할 첫 번째 자세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거나 왜곡하지 말고 정확하게 지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을 내담자에게 거짓없이 진실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는 자기상(自己像)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자기상에 어긋나는 생각이나 감정을 부정하거나 왜곡하거나 억압한다. 이런 과정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정확하게 지각한 경우에도 자신의 지위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진실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자기상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한 여성을 예로 들어보자. 이 어머니는 자녀들의 행동에 화가 난 경우에도 자신이 화가 났다는 사실을 지각하지 못하거나 또는 왜곡해서 지각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경우 이 여성은 비록 화가 나더라도 온화한 미소를 띠며 부드럽게 타이를 것이다.
상담자가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진실하게 표현하지 않는다면, 표현된 감정이 아무리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모습일지라도 내담자가 변화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예수님은 뛰어난 모범을 보여주신다.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그는 몇몇 제자들에게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시면서,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어라”고 말씀하신다.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은 자신이 얼마나 두렵고 괴로운 지를 정확히 지각하신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감추지 않고 진실하게 드러내시는 예수님의 모습이다. 이 모습은 불과 얼마 후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할 베드로가 호언장담하며 자신의 두려운 감정을 부정하고 있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리고 바로 이 자세 때문에 예수님은 위대한 상담자가 되셨다.
2. 상담자는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을 하여야 한다.
상담자가 갖추어야 할 두 번째 자세는 내담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이는 상대방을 평가하거나 비난하거나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의 감정이나 행동을 하나의 사실로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담자가 이런 자세를 보이면, 내담자는 자신이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해도 비난이나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슴속에 깊이 묻어두고 있었던 상처를 드러내게 된다.
예수님은 마음속에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비판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주신다. 대표적인 예로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대하는 모습이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니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장황하게 훈계하거나 비판하지 않으신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따듯한 열을 내려보내는 해님이다.
3. 상담자는 공감적 이해를 하여야 한다.
상담자는 자신의 입장에서 내담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의 입장에서 그의 감정에 공감하는 자세를 가져야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내담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해야한다. ‘이해하다’라는 뜻의 영어단어는 ‘understand’이다. 이 단어는 under(…밑에)와 stand(서다)의 합성어이다. 즉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밑에 서서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낀다는 것이다. 즉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를 가져야한다.
공감적 이해를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삭개오와의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키가 작은 삭개오가 자신을 보기 위해 뽕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마음을 공감적으로 이해하고 표현하셨다. 이 공감적 이해의 결과는 너무나 놀랍다.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는데도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줄뿐만 아니라 토색한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고 자진해서 고백하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예수님은 얼마나 위대한 상담자이며 내면 치유자이신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한1서 4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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