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교회에서는 신실한 직분자였고 가정에서는 좋은 가장으로서 주위에 부러움과 존경을 받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울면서 토해놓는 이야기에 함께 울면서 대화를 나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분은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랐고, 남자만 6형제 있는 가정에 막내아들이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여 부모님이 위에 3명의 형들만 공부시키고 나머지 3명은 먼저 공부한 형들이 공부시키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약속이 큰 형으로부터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큰 형이 대학에 가고 또 공부를 잘하게 되면서 대학원과 유학을 꿈꾸면서 동생들을 뒷바라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생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장남이니까 어쩔 수 없이 뒷바라지를 하고, 그러자 막내인 자신까지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아 중학교 때 무작정 가출해서 서울에 올라왔답니다. 그리고 직장생활과 공부를 하며 갖은 고생 끝에 대학을 졸업하여 지금은 건축업을 하며 이젠 제법 남보란 듯이 잘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자녀에게만은 정말 원하는 대로 잘 해주고 싶고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를 해주고 싶었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들이 너무나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아서 화가 나서 때리려고 하는데 그 아들이 자기 손을 잡으면서 더 이상 나를 때리면 내가 죽어 버릴거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서야 자기가 지금까지 장남을 너무나 미워하고 조그만 일에도 주먹이 날아가고 때려 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더욱이 자기 아내나 다른 사람에게도 쉽게 폭력을 행사했을 뿐 아니라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견딜 수 없어 하는 자기 모습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인간취급도 하지 않고 상종도 하지 않는 자신을 보며 자기는 예수 믿는 사람도 아니고, 좋은 사람도 아니며, 이 세상에 더 이상 살아야 할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겠다고 흐느꼈습니다. 아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남편의 이런 모습을 알지 못했냐고 말입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폭력으로 시달리고, 자녀가 이렇게 고통당하는데 엄마로서 가족으로서 지금까지 어떻게 참고 지냈는가?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내의 대답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남편의 이러한 모습을 알면서도 너무나 자상하고 성실하게 사는 모습에 자기가 한 인간으로서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만 보면 최선을 다해 남편은 돕는다는 것입니다. 폭력적인 모습만 빼면 좋은 사람이고 진실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남편의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 시댁 식구들을 자신도 함께 미워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큰 아들은 정신질환으로 병원의 도움을 받고 치료되었고, 남편은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을 거쳤지만 자기 자신을 찾아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 가정이나 한 사람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쩌면 모든 사람은 어떤 형태든 조금씩은 가해자든 피해자로서 연관이 되어 있는 현실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우리 삶에 너무나 가까이서 볼 수 있고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폭력은 내면의 자리에서 외형적인 현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점점 커져서 개인의 문제에서 가정의 문제로, 더 나아가서 사회문제로 커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부패나 타락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인류의 시작과 더불어 이루어진 폭력의 역사는 지속적이고 발전적이기에 끊임없이 다루어지고 경계해야 할 존재론적인 문제입니다. 즉, 심리적, 현상적, 사회적인 문제 등으로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와 종교의 영역에 뿌리를 두고 있는 문제입니다. 폭력 문제의 또 하나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은 폭력은 그 하나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상업화, 이데올로기화, 예술화, 조직화, 종교화 등을 통해 대중성과 역동성을 만들어 내면서 엄청난 영향력과 인간의 존재 근원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아 어디서부터 다루고 해결해야 할지 모르게 만드는 모호성과 애매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폭력은 따라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체적인 것은 물론이지만 정신적인 것, 언어적인 것, 성적인 것, 종교적인 것, 문화적인 것 등 인간이 인간답게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는 모든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누구든지 해당됩니다. 직업, 나이, 성별, 관계 등 누구든지 그 대상에서 제외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폭력이란 이 세상 어디에서 쉽게 다양한 형태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폭력이 바로 인간의 인격을 무너뜨리게 되고, 인간을 아름답게 성장하게 만드는 통로가 되는 의사소통의 체계를 무너뜨리며, 자신뿐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주위 사람들의 인격과 미래를 파괴하는 일들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가까운 사람과 이웃에게 학습의 모델링을 제공하여서 유전처럼 퍼져 나가게 됩니다. 현대에서 폭력은 가정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학습되어져서 잘 드러나지 않다가 인권 존중의 증대와 여성운동이 활성화되고, 아동의 문제가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뜻은 해결되기 시작했다는 것 보다는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사회문제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유교적인 전통 속의 문화적인 요소로 집안의 문제는 집안에서 해결한다는 것과 체면문화의 영향으로 밝혀지는 것 자체를 수치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폭력이 갖는 심각성이나 문제성에 대한 진정한 의미에서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있는 자료조차 쉽게 마련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이러한 음성적인 폭력의 문제를 이윤추구의 목적을 가지고 문화라는 명목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나타냄으로서 더욱 부정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폭력의 양상은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경제적인 문제와 노인문제, 향락문화와 연결된 성적인 문제, 그리고 가정문제로 인해 버려지는 아동들의 문제와 연관되어 사회전반적인 문제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단순히 심리적이고 내면적인 문제로만 다루기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실정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야 하는 것은 인간의 폭력적인 성향의 시작이 그 내면에서부터 이루어지고 또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 역시 인간 내면 속에서 깊이 의식되고 인식되어져야 해결되어질 수 있는 영역이기에 몇 가지 제안을 통해서 폭력의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 볼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감정표현과 조절에 대한 다양한 방법과 훈련들이 보편화되어져야 합니다. 옛날에 우리 어른들은 감정을 참고 인내함으로서 그것이 증오와 한으로 남아서 자기 내면 속에서만 머물러 있음으로서 주로 제한적인 피해로만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자신의 감정을 참지 않고 폭발시키는 일들이 여기저기에서 많이 일어납니다. 참지 못하고 파괴적으로 표현해버리거나, 또는 내면적으로 저장에 두었다가 일정한 계기가 되면 터뜨리기 때문에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자신과 여러 사람에게 고통과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훈련을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노 클리닉은 그런 의미에서 자기감정을 이해하고, 분노하며 상처와 고통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는 훈련과 창조적으로 표현하며 흘려보내는 법을 배우는데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과정은 생활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잘 표현하고 감정을 관리하며 돌보는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듭니다. 그래서 감정을 조절할 줄 알고, 자기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게 됨으로서 의사소통에 대한 능력도 향상되고, 나아가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도 개발되어 건강하게 자기감정 조절이 이루어집니다. 폭력과 관계된 상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입니다. 상호연관성 있는 기관과 사람들이 서로 비밀을 지키며 정보와 격려 그리고 인내를 가지고 폭력의 정도와 상태에 따라서 누가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는가에 대한 전문성 있는 판단과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신속한 대응이 중요합니다. 궁극적으로 폭력은 일반인들에게 폭력 그 자체가 가진 위험과 심각성에 대한 사전교육과 피해로 인해서 치러야 할 대가 등을 정확하게 알려줌으로써 본질적인 인간성회복을 위한 접근과 동시에 현실적인 사회 구조들을 바르게 세워가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내 속에 잠자고 있는 폭력의 본성을 늘 경계하며 그 파괴적인 에너지를, 창조적이고 생산적으로 전환하는 관심과 훈련이 사명처럼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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