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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가족이라는 모빌

ch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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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는 자녀의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다. 그저 착하고 성실하게 때로는 조용히 무던하게 학교를 다니는 줄만 알았던 아이가 어느 날 가슴앓이를 하며 방으로 들어가 부모와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문을 닫고 칩거할 때, 부모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한편으로 부모의 강압적인 훈육 앞에서 어려서는 그런대로 순응한 듯 보였던 아이가 눈을 부라리며 부모와 가족과 세상과 맞서며 집을 나가 일탈의 세계로 뛰어들 때 부모들은 삶의 중심을 잃게 된다.

자녀의 내면화와 외현화 행동

Rubin과 Mills에 의하면, 자녀의 기질과 부모자녀간의 상호작용, 가족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조건이 서로 어울려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부모들이 꿈꾸는 환상의 나라 시나리오에 따르면, 아동은 차분한 성향과 기질을 타고나고, 부모는 아동의 요구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영유아기나 아동기에 겪을 만한 가족적인 스트레스나 위기는 없다. 이러한 최적의 상황에서는 부모와 자녀 간의 애착관계가 안정적이며 또한 긍정적인 사회, 정서적 적응을 유도하게 된다고 한다.

반면, 파멸의 나라 시나리오에 따르면, 자녀는 유아기에도 달래기 어려운 과다 각성의 성향이 있으며 부모는 자녀에게 잘 반응하지 않고 적대적이며, 가족은 여러 스트레스가 많아 어려운 상황에서 살게 된다. 이러한 치명적인 상황이 지각된 불안정성(felt insecurity)이라는 불안전한 애착관계를 야기하게 된다. 이렇게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또래로부터 격리되고 불안정한 애착을 갖게 되면, 나아가 불안이나 우울증 더 심하게는 정신분열의 내면화행동(acting-in)의 문제들을 갖게 된다.

아이들의 내부에 상처가 있으나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경우와 달리, 반대로 그들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하는 아이들도 있다. 실제로 이들의 이러한 외현화 행동(acting-out)은 우리의 관심을 끈다. 품행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보통 일탈적인 행동으로 또는 반사회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통해 우리의 주의를 끌고, 과잉행동적인 아이들은 반복하여 몸을 뒤척이고 주위를 방해하기에 우리는 한시도 그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이 두 가지의 어떠한 경우도, 가족을 체계적으로 조망하는 관점에서 볼 때, 부모 때문만도 아니요, 부모가 아무 영향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가족은 하나의 체계로 구성되어 있고 각자의 역할과 기능이 어우러져 그 체계의 역동을 만들기 때문이다. 가족은 하나의 근사한 모빌과 같다. 모빌의 전체적인 구도를 밖에서 볼 때는 참으로 멋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모빌이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의 도구가 각각의 무게 중심을 갖고 아름다운 자태를 보일 때 우리들은 “그 집은 얼마나 좋아요. 정말로 화목해 보여요!”라고 말하게 된다. 그러나 그 중 한 개의 조각이 조금이라도 위치를 벗어나 중심을 잃게 되면 이내 가족의 모빌은 흐트러지고 만다.

아동·청소년 가족내 삼각관계

가족 중 증상을 가진 아이들, 다시 말해 자녀들의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모들을 만날 때면, 우리들은 자녀의 문제가 부모와 혹은 형제간의 상호작용으로 이런 저런 동맹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증상은 가족 내에 있는 불안이 고삐 풀린 상태로 자유롭게 떠돌다가 그 정도가 위험수순에 달하게 되면, 가족체계가 서로 융합되고 흩어지는 능력이 한계를 넘어섰을 때 나타난다.
자녀가 중심인 가족에서 흔히 나타나는 자녀의 증상은 학교에서의 잘못된 행동이나 관계갈등, 혹은 등교거부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아이들은 가족 내에서 가장 정서적으로 취약한 사람 즉, 가족의 불안을 흡수하고 가장 고립되고 효능감이 떨어지며 가장 기능 수준이 낮은 사람이다. 이러한 취약성이 가족체계에서보다는 학교 내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우선적으로 진단이 필요한데, 종종 가족관련 문제가 학교로 자리바꿈하여 일어난다.

대체로 부부 사이가 소원하거나 갈등이 있을 때, 힘의 균형을 잃은 부모는 자녀에게 의지하거나 자녀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경우가 있다. “저는 남편에게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아이들이 더 중요해요.”라고 말하면서 어느 자녀와 특별한 관계를 갖게 된다. 이렇게 한 쪽 부모에게서 특별한 아이는 다른 쪽 부모에게는 분노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이 분노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배우자의 어떤 특징을 꼭 빼닮거나 남편(부인) 확대가족의 누군가를 닮거나 혹은 자녀가 상대 배우자에게 특별한 아이이기 때문이다. 자녀를 분노나 비판의 표적으로 삼는 한 쪽 부모는 배우자를 향한 분노와 비판을 자녀에게 대치시켜 향하게 된다.

이렇게 표적이 된 자녀는 양쪽 부모에 대한 해석을 내재화해서 내면에서는 전쟁을 일으킨다. 양 부모 사이에 끼어있는 느낌의 자녀는 긴장감을 갖게 되고 정서적으로 혼란하게 된다. 이러한 정서적 혼란으로 인해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부모들은 이렇게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인위적으로 다시 동맹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자녀를 걱정하는 부모로서 연합하는 것이지 부부로서는 아니다.

부모가 있지만 그 중 어느 한 쪽의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잘 하지 못할 때, 사실상 부모의 부재를 대신하는 자녀가 생기게 된다. 대체로 맏이가 이 부재상태를 대신하여 집안의 우두머리가 되는데, 이러한 맏이의 위치는 이중역할을 갖게 하여 혼란스럽게 된다. 맏이는 실제로는 권력을 갖지 못하면서도 상당한 책임을 지게 되는 힘든 위치에 처하거나, 부재중인 아버지나 어머니를 대신하여 특별한 자녀이었을 경우 한 쪽 부모와의 갈등이 잠재하게 된다. 이러한 갈등은 대부분 다른 쪽 부모가 그 맏이를 더욱 더 비난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며 이것이 맏이와 동생들에게 이중적인 행동기준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부모화된 자녀는 가끔 집 밖에서 위험한 행동에 빠지게 되는 일이 있거나 때로는 자신의 긴장에 억눌려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체계는 서로 다른 위치에서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중심적으로 설 때 온전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구성원의 손상으로 가족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벗어나 무게중심을 잃고 이내 무너지고 만다. 다시 말해 가족 체계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능이 어느 정도인지? 개개 가족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기질이 가족과 다른 구성원과 얼마나 잘 맞는지? 가족의 내적, 외적 스트레스가 생활주기에 걸쳐 얼마나 흡수되고 드러났는지에 따라 한 구성원의 증상이 역기능적이 될 수도 있고 기능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가족들 사이의 상호작용 역동의 힘과 영향을 이해하지 못할 때에는 개인의 내면에만 맴돌기 쉽다. 그러한 경우에는 여전히 내면의 깊은 상처는 덮어둔 채 겉으로 드러난 상처만 치료하고 곧 덮어버리고 만다. 나의 온전한 치유가 부부를 변하게 하고 부부의 변화가 자녀를 변하게 하며 비로소 이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군무를 멋들어지게 출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나만 변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하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물론 부부가 그리고 부모가 함께 치유될 때 훨씬 빠르게 가족이라는 모빌을 보기 좋게 만들 수 있겠지만, 혼자서 추는 탱고라도 첫 발을 내딛는 그 순간 우리들은 역동적인 탭의 음악소리에 맞추어 가족 모빌의 경쾌한 흔들림을 지켜볼 수 있다. 즉, 가족들마다 각기 다른 모빌을 구성하며 이들 간의 이러한 역동을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더 큰 그림을 조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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