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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기] 한 사람보다 좋은 상을 얻을 수 있는 만남

ch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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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 어머님은 마을에 나가실 때는 언제나 나를 등에 업으셨습니다. 어머니 등에서 나는 끝없이 전개되는 세상이야기를 들었고, 인간사의 다양한 얼굴을 어렴풋이나마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니 등은 나에게 따뜻한 정서를 심어 주었습니다. 오늘날 내가 상담자로서 능력을 조금이라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 등에서부터 터득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의 역사는 어찌보면 만남의 역사로, 자신이 가진 상처도 만남의 산물이요, 자신에게 있는 독특한 특성과 장점 또한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 인간은 다양한 만남의 그물망 가운데 살아가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만남은 바로 가족과의 만남입니다. 가족이 오늘의 자신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가정 안에서 자라며 겪은 좋은 경험이나 아픈 경험은 자신을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입니다.

나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토양을 알아야 하고, 또한 그 나무가 성장하면서 겪은 기후를 알아야 합니다. 나'라는 한 그루의 나무가 지금까지 성장해오는데 내 가정의 토양과 기후는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주의 깊게 성찰해보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따라서 내가 누구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해하려면 그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계에 내려오는 만남의 역사(가계도)를 되짚어 보는 일은 나 자신을 바로 알고 이해하는데 무척 중요한 작업입니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러저러한 분으로 어떻게 살아오셨고, 성품은 어떤 분이셨다. 그래서 그분들은 나의 아버지에게 이러저러한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신 것 같다. 또 외조부님은 이러저러하게 만나서 결혼을 하고 나와 우리 형제들을 낳으셨는데, 그분들의 삶의 자세가 나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러저러한 성격과 상처를 가지고 있다.”

결혼 이후 받은 상처는 중간에 떠 있는 상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당한 계기를 만나면 자연스레 치유됩니다. 하지만 성장과정 중 가정에서 부모에게 상처를 입게 되는 경우, 그 뿌리는 대단히 깊기 때문에 뽑아내는 일도 무척 어렵습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여러 단계의 치유 과정도 필요합니다. 이처럼 어린 시절 부모를 통해 물려받은 유산은 한 사람의 인생 행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더불어 부부가 되어 만난 남녀 또한 서로의 부모로부터 받은 가족체계에 따라 부부 사이의 갈등과 화합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령,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자란 남성은 대개 폭력 가장이 됩니다. 부모로부터 갈등을 푸는 방식으로 주먹을 쓰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생각할 여지도 없이 즉각적이고 반사적으로 주먹을 휘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로부터 똑같은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이라도 폭력을 쓰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훈련과 자신의 노력으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게 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도 폭력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자신의 폭력성과 대결합니다. 내적 갈등을 겪습니다. 폭력을 쓰지 않는 부모에게서 성장한 사람이 갈등없이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는 다릅니다. 폭력을 상속한 사람이 아무 갈등 없이 폭력성을 잠재울 길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결혼생활을 하면서 틀이 다른 두 사람, 즉 부모로부터 전혀 다른 가족체계를 물려받은 두 사람이 결합했을 경우, 당연히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남녀가 만나 행복하게 잘사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봅니다. 이 경우 부부는 서로 피눈물나는 노력을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함께 잘 살아보려고, 그야말로 젖먹던 힘을 다해 노력했을 것입니다.

나는 자라면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깊은 정을 주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부모의 행위는 곧 교과서입니다. 아내를 깊이 사랑하는 과목을 배우지 못한 내가 아내를 깊이 사랑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깊이 사랑하는 것인지조차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의 결혼생활은 불협화음의 연속이었습니다.

위기의 순간들이 찾아왔지만 우리 부부는 자식들에게 좋은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발버둥을 쳤습니다. 배우지 않은 것을 새로 세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머리보다는 몸이 더 빨랐습니다. 몸에 익은 것들을 억제하고 평화를 지향하려고 할 때마다 분노의 감정이 몰아쳤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자식들에게는 더 이상 우리가 겪은 고통과 갈등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었습니다. 굳은 인상을 펴고, 아내와 아이들을 안아 주는 일, 손을 잡고 걷는 일은 내게 어색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딴 살림을 차리고도 위세가 당당하던 아버지라는 교과서를 제쳐두고라도, 가정 내에서 이루어야 할 평등과 사랑과 화목이라는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한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부담스러웠습니다. 특히 자기 중심적인 욕구와 폭력을 발휘하고 싶은 욕구, 상대를 미워하고 싶은 욕구 앞에서 나를 추스르고 통제하는 일은 너무나 버거웠습니다. 그러나 나의 그런 노력이 위선이 되지 않기 위해 진심을 다해야 했습니다. 덕분에 딸 아이들은 별탈없이 잘 자라주었습니다.�

부부애가 각별한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은 결혼생활에서도 자연스럽게 사랑을 표현할 줄 압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손을 잡거나 안아주는 스킨십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성장하면서 익숙하게 보아온 사랑의 행위가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가 결혼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응용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대에서 좋은 전통을 만들어가는 사람과 좋은 전통을 물려받은 차이는 엄청납니다. 전자는 아주 작은 사랑의 행위도 생각을 모으고, 용기를 내어 실천에 옮기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후자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전자는 분노의 감정이나 폭력적인 성향을 억눌러야 하는 데 반해, 후자는 노력하지 않아도 분노의 감정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자는 홀로 싸우는 외로운 투사와 같습니다. 이런 한 사람의 외롭고 처절한 투쟁으로 후손에게 대대로 좋은 유산을 물려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아픔을 가지고 치유를 받기 원하는 사람들의 상처가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살펴보면 대부분 가정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장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아이는 어른이 되어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이혼을 선택하게 됩니다. 또한 흔들리는 가정에서 상처 입은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면 청소년 세계는 문제로 가득한 세계가 되고, 문제 청소년이 자라 어른이 되어 머무는 곳이면 그곳이 가정이든, 직장이든, 사회단체든 거기에는 분노와 분쟁과 분열이 싹트기 마련입니다. 가정에서 시작된 문제가 사회문제, 정치문제, 교육문제 더 나아가서 종교문제에까지 파고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 가정을 통해 어떠한 유산을 물려받는가는 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가 머물러 있는 모든 삶의 자리에까지 대단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한 사람의 가족체계를 건강하게 세우는 것은 그 자신의 삶의 체계뿐만아니라, 그 사회와 그 나라의 체계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의 가정은 어떠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족은 전도서가 말하는 두 사람이 있기에 한 사람보다 좋은 상'을 얻을 수 있는 만남입니까?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 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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