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칼럼

칼럼

원장칼럼

게시판 읽기
뜻밖의 모습으로

chci

  • 조회수4,367

뜻밖의 모습으로 

유대 땅 베들레헴의 성탄절은 우리 나라처럼 춥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로마의 압제에 시달림을 받던 이스라엘 백성의 시대적 상황은 혹한이었다. 혹독한 한파 속에서 예수님은 탄생의 고고성을 터트리셨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을 겨울의 사람 이라고 생각한다. 겨울에 태어나 십자가의 형틀이라는 겨울의 현실 속에서 죽어 갔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유대인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뭉개버리고, 말똥 냄새 요란한 마구간으로 메시야를 보내셨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수세기에 걸쳐 대망해 오던 메시아관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여기에는 우리는 새로운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모든 이들이 기대하는 모습이 아닌,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미천한 모습으로 나타나신 메시아의 모습을.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휘황찬란한 곳에서 하나님을 찾고 싶어한다. 많은 이들이 알아주고 박수를 치는 곳에서만 하나님을 만나려 한다. 생색이 나는 곳에만 도움을 주려 하고, 더불어 나누는 삶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오늘의 현상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를 만나고 싶으면 낮은 곳으로 오너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사람들을 기억하여라. 그들의 삶 속에서 나를 만나게 되리라.

하나님은 무엇이나 다 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러나 그분은 또한 누구보다도 나의 사랑을 원하시는 분이다. 나에게 이용가치가 있는 분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나의 도움을 바라는 사람으로 나에게 다가오신다. 뜻밖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한낮에 천막 앞에 앉아 있었다, 그때 세 사람의 나그네가 그 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냥 모른 척하고 있어도 그만인 나그네들을 그는 몸소 달려나가 반갑게 맞이하고 집으로 초대하여 정성껏 대접하였다. 떡을 굽고 양을 잡아 그들을 대접하던 순간 아브라함은 그들이 바로 천사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하나님의 천사를 만나는 기쁨, 만약 아브라함이 그 나그네들을 그냥 지나쳐 가게 했더라면 그런 축복된 만남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 구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러 떠난 사람은 원래 세 명이 아니라 네 명이었다. 하늘에 나타난 메시아 탄생의 징조를 보고 네 명의 동방박사들이 함께 모여 떠나기로 했는데, 한 박사가 너무 지체하는 바람에 세 사람이 먼저 떠났던 것이다. 늦게 준비를 마친 네 번째의 동방박사는 먼저 떠난 세 동방박사들을 따라잡기 위해서 부지런히 쫓아갔으나 끝내 만날 수가 없었다. 

물어 물어 베들레헴을 찾아간 네 번째의 동방박사는 그 곳에서 피비린내 나는 살욱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헤롯이 어린아이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사색이 된 어느 부부가 자기 아이를 살려 달라며 울부짖고 있었다. 박사는 새로 태어날 왕께 드리려고 준비한 보물을 하나를 꺼내어 헤롯 군대로부터 아이의 생명을 구해 준다. 

그 후 박사는 아기 예수가 멀리 애굽으로 피난을 갔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그는 또 애굽을향하여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메시야의 행적은 묘연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길거리에서 노예로 팔려 가는 한 젊은이를 보게 된다. 그 젊은이의 사정이 너무나 딱하여 그는 그냥 지나쳐 갈 수가 없다. 그는 메시아를 만나면 드리려고 준비해왔던 소중한 보물을 또 하나 꺼내어 노예상인에게 건네주고 젊은이를 구해준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보물마저 그는 사경을 헤매는 어떤 사람을 구하기 위해 주어 버린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빈손뿐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30여년의 세월을 보내버린 그 동방박사는 이제 늙은이가 되었다. 그의 꿈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는 어느 날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기을 지나가다가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을 만난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군중의 행렬을 바라보았으나 너무 늙고 지쳐 있어서 군중들의 외침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 그는 간신히 길 옆으로 비켜서서 다가오는 행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행렬의 맨 앞에서 30대쯤으로 보이는 젊은이 하나가 십자형의 형틀을 지고 가파른 언덕을 힘겹게 울라오고 있었다. 그분이 바로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 그가 일생을 찾아 헤매어 다녔던 그 메시아임을 그는 꿈에도 알 수 없었다. 어느 돌담 밑에서 지친 몸을 쉬고 있을 때 천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그는 무너진 돌무더기 밑에 깔렸다. 죽음의 시간이 다가옴을 느낀 구기 처절한 목소리로 하늘을 향해 울부 짖었다. 

주여, 여태까지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기 위해 그렇게 세상을 헤매이며 고생을 했는데 정작 그분은 보지도 못한 채 이대로 죽어야 하나이까?

그순간 그에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나를 세 번씩이나 만났으면서도 나를 못 알아보겠습니까? 내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당신이 나의 생명을 구해 주었습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도 전혀 예기치 않는 곳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12월 25일은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성탄절이다. 그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까마득하게 잊혀진 어떤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다. 그리고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 버리는 나그네로 오신다.

게시판 목록이동
이전글 예수를 만난 사람
다음글 아픔을 통해 성장하는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