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시작은 별일이 아니었는데….” 결혼 3년째라는 30대 초반 의 남성은 쑥스럽다는 듯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 일의 발단은 부 부가 집안 행사로 큰댁에 다녀오면서 시작되었다. 집에 돌아오 는 차안에서부터 부어있던 아내가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말에 기 다렸다는 듯이 마구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내 말에 의하면 집안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들의 살 림솜씨며 남편 뒷바라지·아이 건사하기 등을 은근히 비교하면 서 자신을 무안하게 했으며, 이런 일이 결혼 이후 매번 되풀이되 고 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지나치게 솔직한, 그러나 뒤끝은 없는 어머니 의 성격을 알고 있던 남편은 아내가 어머니의 말씀에 상처를 받 았겠다 싶어 위로라고 했는데, 그것이 그만 일을 크게 만들고 말 았다고 한다. “어머니 성격을 알잖아. 노인네가 별 뜻 없이 한 말인데 흘려버 리지, 뭘 그걸 가지고.” 흥분한 아내는 “대뜸 그래, 자기 엄마 는 괜찮은데 나만 잘못했다는 말이지.” 하고 되받았고, 서로 상 대집 식구 이야기로까지 비화돼 급기야는 결혼할 무렵 서로 상대 방 집안에 섭섭했었던 이야기까지 들먹이며 큰 싸움이 벌어졌 다. 싸움 이후 엿새째, 서로 각 방을 쓰면서 말도 안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으면서 냉전을 벌이고 있는데, 자신도 아내의 말에 마음이 많이 상해서 먼저 화해를 청하고 싶지는 않고 심지어 ' 내가 사랑했던 여자가 이 여자 맞나, 도대체 결혼은 왜 해서 이 고생인가싶기도 하다는 것이다. 사랑으로 시작된 결혼생활이 초기일수록 갈등으로 점철된다는 것 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그러나 대부분 결혼생활 초기의 갈등은 서로 다른 배경과 특성을 가진 두 사람과 양쪽 집안이 서로 적응 해가면서 치뤄야 할 통과비용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 을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로 예절바르고 슬기롭게 해결하면 ' 너희 엄마·너희 집이 우리 어머니·우리 집이 될 수도 있 고, 그렇지 못하면 사소한 시비가 결혼생활 자체를 위협하는 잠 재적인 앙금이 되어 남을 수도 있다.
자료원 : 2000년 7월 11일.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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