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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과 '채움'으로 완성되는 거룩

chci

  • 등록일2003.07.28  |  
  • 조회수9,667

루터, 칼빈, 웨슬리는 성자가 아닌가? 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
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는 성자가 아닙니다
최익철 신부, 김기홍 박사, 지형은 박사의 글을 종합해 보면.
1. 가톨릭 교회의 기준을 따라 시성식을 통해 공식적으로 선언
된 분들은 아닙니다.
2. 이 땅에 사는 동안 죄를 전혀 짓지 않은 분들은 아닙니다.
3. 예수님과 같이 완전한 거룩을 소유한 분들은 아닙니다.
4. 자신의 공덕으로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하는 능력을 가진 분들
은 아닙니다.
5. 많은 기적을 일으켰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인정받은 분들은 아
닙니다.


그러나 성결은총을 경험했으며, 믿음의 본이 된다는 의미에서는
성자입니다.

조종남 박사, 한철하 박사의 글을 종합해 보면,
1. 칼빈과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성화되
는 과정에 대해 경험하고 증거하였습니다.
2. 구원은 중생과 성화를 포함할 때 그 의미가 완전해집니다.
2. 성화는 영화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과정이지만, 순간적인 성
결체험을 포함합니다.
3. 성결의 체험은 마음에서 죄적인 모든 것을 추방하는 소극적
측면과, 완전한 사랑의 적극적 측면이 있습니다.
4. 성결 곧 완전성화는 동기의 순수성이며, 순간순간 회개와 믿
음으로 유지되는 완전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체로 고형화된 완전
이 아니라 믿음으로 주의 은혜를 바라보게 하는 완전입니다. 예
수님으로 말미암은 거룩입니다.

그렇다면 성결은총 즉 의롭다하심을 받았다는 증거는 무엇입니
까? 개혁자들은 성결체험을 하신 분들입니까?


1. 열쇠는비움과 채움입니다.
무엇이 비워집니까? 영 속에 뿌리박힌 죄성입니다. 타락한 인간
의 영속에 뿌리박힌 원죄입니다. 웨슬리가 말한 소극적 측면의
성결 즉 마음의 할례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는 했지만 여전
히 영 속에 뿌리박힌 죄성으로 인해 불순하던 마음의 동기가 이
로써 순수해집니다.
골로새서 2장 11절에서는 이 체험을“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할례는 예수님을 영접하자
마자 받는 것이 아니고 점진적 성화의 과정을 거칩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면 이러한 이치가 잘 묘사되
어 있습니다. 로마서 4장 9-11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의로 여기
심을 받게 된 것은 아직 할례를 받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할례
를 받은 것은 믿음으로 받은 의를 인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75
세에 부르심을 받았고, 후사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
으로써 85세에 칭의 경험을 했습니다. 99세에는 할례를 받고 의
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의롭다하심을 실제로 체험한 것입니
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할례라는 표현에서, 이 은총이 사람
의 능력이나 선행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받
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이 채워집니까? 성령의 생명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고전
13장에서 말하는 큰 은사요, 사랑의 능력이요, 웨슬리가 말하는
성결의 적극적 측면 곧 완전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이 완전은
행위의 완전이 아닙니다.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의 생명이, 죄
성이 제거되고 비워진 마음에 채워짐으로써 맺어지는 열매입
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할례받은 심령에 좌정하신 성령의 능력
으로 행하는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기록된 성령의 열매들입
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회개하고 간구함으로만 유지되는 능력입
니다.
그러므로 성결은 성도들의 행실에 흠이 전혀 없고 실수가 없다
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고 성결을 체
험한 성도라 할지라도 영화에 이를 때까지 계속적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아직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있기 때문
입니다.

2.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에서도 이 증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웨슬리와 루터 역시 마음의 할례를 영적 성장의 완성점에 이르
는 중요한 요소로 봅니다. 웨슬리는「Works」13권에서 성화의 목
표점인 성결 은총에 대해 적극적 측면과 소극적 측면으로 설명합
니다. 적극적 측면은완전한 사랑으로서, 마음과 영혼과 뜻
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죄를 추방한 영혼에 담기는 거룩한 사랑이며, 이 사랑을 방해하
는 어떤 것도 영혼 가운데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결의 소극적 측면인 마음의 할례가 요구되는데,「Works」5
권과 8권에서마음의 할례는 죄에서의 해방으로 모든 죄에서 정
결케 되고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합니
다. 마음의 할례를 또 다르게 표현하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간직한 부패와 질병 즉 인간의 불순물을 태우는 연단의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영 속에 자리를 잡으시는 것입니다.

루터(M. Luther) 역시「마틴 루터의 강론」에서육적 할례가 부
끄러움과 고통을 수반하는 것처럼 육체적 탄생과 관련된 모든 것
들을 단절하는 마음의 할례는 아프고 고통이 심하다. 그러나 이
마음의 할례를 통하여 죄의 세력이 뿌리뽑힌다고 하였습니다.

칼빈은 마음의 할례에 대해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진 않지만 그
의 성화론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칼빈 역시 성화의 단계에 도달
한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칼빈 주석」을 보면, 로마서 8장을
해석하면서 구원의 여정을 예지-예정-부르심-칭의-성화-영화의
단계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접붙
임이란 말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 접붙임을 자신의 본질에서
그리스도의 본질로 옮겨지는 실체적 연합으로 정의했습니다. 그
는 성도와 그리스도 사이의 이런 실체적 연합을 신비한 결합이라
고 말하고, 이 신비적 결합을 영적인 결혼으로 설명하였습니다.

따라서 루터, 칼빈, 웨슬리는 성결은총을 받은 분들이며, 우리
의 본이 되는 성자들 즉 믿음과 말씀으로 성화된 복음적 모델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가면서
성자라는 말이믿음으로,은혜로가는 이 길에 조금이라도
걸림이 된다면 다른 이름이어도 좋겠습니다.빛을 따라 산 성도
들,성화된 성도들,좁은 길로 간 하나님의 사람들,십
자가를 따라간 성도들,생명의 능력으로 살아간 하나님의 자
녀들,하나님과 합일된 성도들…. 더 복음적인 이름을 위
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방황하
는 이 시대에 정확한 분별력으로 믿음의 방향을 제공해줄 분들
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개혁자들이 믿음으로 걸어갔던 삶의 경
험을 우리네 삶으로 다시 가져올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자료는 na-da 홈페이지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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