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논단

칼럼

교수논단

게시판 읽기
[김형준] 분노를 통해 나를 들여다 보기

chci

  • 조회수7,386

에게 감정만큼 다양함과 복잡한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 이 세상에 없는 것 같다. 내게서 나오고 내게 속한 것 같지만 쉽게 이해할 수 없고 처리할 수 없는 것이 또한 감정이다. 나를 움직여가는 알 수 없는 힘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알 수 없는 많은 원인을 감정에게 돌린다. 그러나 사실 감정은 나를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된다. 나를 이해 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에게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내 삶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볼 수 있게 해준다. 더 나아가서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등을 알 수 있는 지도와 같은 역할도 해 준다. 나를 파멸로 몰아넣을 수도 있지만, 삶의 중요한 의미를 느낄 수도 있다.
그 중에서도 분노의 감정은 더욱 그러하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감정 중 가장 다양한 얼굴로 나타나며 복잡하게 얽혀있다. 단순하고 쉬운 것 같은데 다루기는 어렵다. 작다고 무시하면 점점 커져서 감당하기 어려워질 뿐 아니라 관심 갖고 대하지 않았던 대가를 치루게 만든다.
그러나 분노는 나를 들여다보는 창(窓)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나를 알아차리게 만드는 소중한 보석과 같은 것이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자에게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납지만 길들여진 동물과 같은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에게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며 예의를 갖추며 물러설 줄도 알고, 오히려 자신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것을 인간에게 베풀 줄도 아는 뜻밖의 너그러움과 여유도 있는 존재다.

우리가 대하고 있는 분노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분노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기독교인일 경우에는 분노가 가진 정직한 감정을 감추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분노는 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분노의 감정을 나타내는 사람은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신뢰하지 못할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할 수 있으면 분노를 감추면서 자신은 용서의 사람이며, 인내와 절제로 잘 갖추어진 인격자요 신앙인임을 나타내려는 기회로 삼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발산하면서 자기 스스로의 편안함을 위해서 감정을 쏟아내는 사람이 있다. 감정자체는 선악의 가치판단 대상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고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받아들이며, 자기 중심적인 사고로 타인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는 스타일의 사람이 있다. 그래서 흔히 분노를 내는 사람과 내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는데 사실은 분노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문제이지 누구나 분노의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레스 카터(Les Carter) 박사와 프랑크 미너스(Frank Minirth) 박사에 의하면 사람은 각자의 성격이나 환경 또는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분노를 억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분노를 노골적이며 공격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분노를 아주 소극적으로 나타내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의 경우는 자신이 화가 난 것을 설명하며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 분노의 감정을 잘 처리한 경우에는 내면적으로 화를 내는 것을 포기함으로 감정의 앙금을 남기지 않고 처리하는 사람도 있다. 어쨋든 누구나 분노의 감정을 느끼고 또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분노의 이유

우리에게 있어서 분노가 일어나는 이유는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하다. 분노는 인간이 표현하는 가장 기초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무수한 원인이 그 내면에 있다. 분노는 다양한 모습으로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발생 이유가 있다. 분노의 숨겨진 표현을 깨닫는 것 이상으로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분노는 일단 자아 보존 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분노에 대해서 타인이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일단 분노가 일어날 때 우리는 크게 세 가지 면에서 그 원인을 설명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가치를 보존하려는 의지가 손상되었을 때에 분노가 발생한다. 즉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때에 나타난다. 그리고 나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할 때 분노가 일어난다. 이것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날 때의 경우를 살펴보면 더욱 쉽게 분노가 일어나는 경우를 살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반적으로 개인이나 사회 등이 가지고 있는 가치나 신념이 위협받거나 무시당할 때 일어난다. 그 외에도 건강상태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하고 환경이나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분노의 영향

분노는 무엇보다도 건강에 영향을 준다. 체내에서 아드레날린과 노라드레날린이 분비되도록 자극한다. 두 생화학물질은 분노와 각성, 긴장, 흥분 그리고 열기를 느끼게 하는데, 심장박동과 혈압, 호흡에 변화를 가져다주고 그 외 신체적인 변화에 영향을 주어서 건강에 좋지 않게 된다.
분노는 단순히 그 감정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발전되어 분개나 적개심으로 발전되고 나중에는 증오나 한으로 남아 개인의 정서와 관계에 어려움을 주게 된다. 나아가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잃게 되고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도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적인 지위와 생명까지도 위협받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의사결정과정에 있어서도 충동적이 되거나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결정하게 되어서 바르게 판단하지 못하여 받는 불이익도 많게 된다. 나아가 영적인 문제까지 연결되어 신앙적인 자산들을 한꺼번에 쏟아버리고 상실하게 되어 회복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분노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분노는 우리에게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감당해낼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힘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일에 경고의 역할을 하게 되어서 잘 활용하기만 하면 더 큰 문제나 어려움을 예방하고 준비하는데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분노를 통해 자신을 더욱 깊고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에 자신과 타인의 인간관계, 자신 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던 문제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분노의 해결

분노는 우리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매우 유익한 감정이 될 수 있다.
분노를 다루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자신의 분노감정에 대해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분노자체를 죄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분노자체를 인정하면서 하나님께 갖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분노의 감정을 쏟아내되 발산하는 것이 아닌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고 자신의 감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이전에 분노의 원인을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경우 비합리적인 신념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경우나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이 이미 이전에 학습된 파괴적인 패턴을 따라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래리 크랩은 목적과 욕구를 분별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즉 내가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욕구일 경우에는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정당하게 그리고 간절히 원하는 것이지만 나의 노력만으로는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표라면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과 계획을 세우는 것이 현명한 해결방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게리 채프먼은 분노를 다룰 때에 화가 났다는 사실을 인정하되 즉각적인 반응을 자제하며 분노의 원인을 찾아보고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그것을 문제삼지 않기로 선택하고 하나님께 아뢰라고 권면한다.
대체적으로 분노는 분노감정의 수용과 선택이라는 사실의 인정, 그리고 하나님께 모든 사실을 가지고 나아가는 방법을 통해서 해결책을 구한다. 참고로 필자의 경우 위의 과정을 사용하면서 계속 나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 이 일이 화가 날 일인가?, 이 일이 화를 낼 일인가? 계속 반문한다
분노! 하나님의 또 다른 사랑으로 모두에게 다가가기를 축복한다.

게시판 목록이동
이전글 꿈에 대한 단상
다음글 분노,용서,치유라는 세 오누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