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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목회와 한풀이 목회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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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목회와 한풀이 목회상담 

정 태 기 교 수 ( 본원 원장, 한신대학교 신학대학 목회상담 ) 

1. 서 론 

목회상담이란 인간의 아픔을 치유해주고 그의 삶을 성장시켜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에서 목회상담이 목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한국인들이 지닌 아픔을 이해해야 한다. 정치, 경제,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아픔을 우리는 한( 限 )이라 부른다. 한국적 목회상담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한풀이 목회상담을 언급해야 되리라 생각한다. 한 ( 恨 )이란 가슴속에 억압되어 있는 아픔의 응어리이자 마음 한 가운데 오랫동안 쌓이고 또 쌓여 온 분노의 앙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풀리지 않고 가슴속에 축적된 한을 마음의 상처, 고통, 마음의 쓴 뿌리 등 여러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인생을 사노라면 우리는 많은 크고 적은 고통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우리 한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쏟아지는 고통은 너무나 극심했다.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고난의 상처에 적응하고 극복하면 살아 남았고 실패하면 파멸되어 버리고 말았다. 밀물처럼 밀어닥쳐 와 가슴속에 쌓이는 고통 또는 한을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치유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더 어두워졌고 결국 소망을 상실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의 운명은 고난과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 고통 또는 한은 우리의 삶과 떨어질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를 움직인 사람들, 특히 기독교 역사의 주인공들을 조사해 보면 자신의 마음속에 쌓인 한의 응어리가 그리스도를 만나서 위대한 힘으로 분출되었던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한은 인간을 영적으로 성숙시키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마음속에 쌓인 한의 응어리를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위대한 힘도 되고 파괴적인 세력도 될 수 있다. 즉 한을 대처하는 우리의 태도에 따라서 천사의 힘으로도 사탄의 세력으로도 화할 수 있다. 

II. 한( 恨 )의 생성 과정 
그러면 이런 내적인 상처이자 분노의 앙금인 한은 어떤 경로를 거쳐서 마음속에 자리 잡는 것인가? 먼저 한이 마음속에 자리잡기 위해서는 마음에 고통을 주는 사건과의 만남이 있게 된다. 충격적인 사건을 만나면 일단 처음은 주춤하게 되어 있다. 사건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충격이 심한 사건을 만나면 정신 기능까지 어느 기간 동안 마비될 수가 있다. 자신의 삶에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대상을 상실할 지경에 이르면 누구든지 마음에 극심한 타격을 받도록 되어 있다. 농토에 삶을 의지하고 사는 농부가 농토를 잃을 때, 자식을 삶의 가장 큰 의미로 믿고 사는 부모가 그 자식을 잃어버릴 때, 지금까지 대학 입학을 삶의 최대 목표로 정하고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대학 입시에 실패했을 때, 목회자가 갈 곳도 없이 교회를 떠나야 할 때, 자기가 믿고 의지하던 사람에게서 배반을 당할 때 인간은 마음속에 깊은 아픔을 느끼고, 이 아픔은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서 분노로 바뀌어 진다. 분노로 바뀌어 진 감정은 어디론가 발산하기 위해 출구를 찾도록 되어 있다. 이 때 분노의 감정이 출구를 찾아 뚫고 나갈려고 하는 것은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 가고자 하는 항상성의 원리 ( Homeostasis )이자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보호하려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이기도 하다. 
고통의 사건 후에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분노와 짜증의 감정을 어떤 출구를 만나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恨이 자리 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자신의 성격 때문에 또는 사회적인 환경에 의해서 자신의 분노의 감정을 어디에도 쏟아 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식들의 마음 속에 맺힌 소리를 들어주지 않을 때, 학교에서 선생이 학생들의 가슴 속에 맺힌 소리를 들을 수 없을 때, 정치하는 사람들이 백성의 소리를 들을려 하지 않고 억눌러 버릴 때, 그렇게 자란 자식들과 그런 교육 현장에서 배운 제자들과 그런 독재정치 아래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의 가슴 속에는 풀리지 않는 분노의 앙금이 恨으로 자리잡기 시작하고 이 恨의 바위덩어리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그 자식, 그 제자, 그 백성의 마음 속에는 사랑의 감정이 메말라 가면서 생명력을 상실해 가고, 그 것이 더 오래가면 정신도 영도 육체도 병들어버리고 만다. 

III. 恨의 유발 요인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영양분을 필요로 한다. 첫째는 음식물에서 얻는 물질적 영양분이요, 다음은 인간 관계와 신앙에서 얻는 사랑의 영양분이다. 이 두 가지 영양분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지나치게 결핍되면 인간은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다. 신학자 폴 틸리히 ( Paul Tillich)는 "사랑은 삶을 이끌어 가는 힘"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인간이 사랑의 영양분을 섭취할 수 없을 때 가슴에 상처가 자리잡게 되고 이 상처가 어느 기간 동안 지속되다 보면 앙금의 감정인 恨으로 자리를 잡는다. 어떤 환경에서 인간은 사랑의 영양분 결핍을 겪게되는 것인가? 다른 말로 어떤 경우에 인간은 마음에 상처를 입게되는 것인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해서 언급하고저 한다. 
첫째 무관심은 인간의 마음 한 가운데 상처를 가져다주는 주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을 주고받고 싶은 욕구를 지니고 있다. 이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인간의 성장은 중단된다고 마슬로 ( Abraham Maslow )는 주장하고 있다. 한 인간이 관심을 받아야 할 어떤 대상으로부터 무관심을 당할 때, 또는 관심을 주어야 할 사람이 관심을 주지 않을 때 상대의 마음 속에는 실망이 자리잡게 되고, 이 실망을 누구에겐 가 털어놓을 수 없으면 자연스럽게 분노의 앙금이 쌓인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쌓인 분노의 앙금은 출구를 찾아 터져 나가려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출구를 발견할 수 없으면 분노의 감정은 더욱 가속화된다. 이런 상태가 어느 정도 계속되면 분노의 앙금은 곪아서 恨으로 자리를 잡는다. 교회나 학교, 가정이나 직장, 정치제도가 권위적이고 폐쇄적일 때 그런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에 쌓인 恨으로 시달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둘째로 열등감이 분노의 감정을 유발시키는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열등감은 불안을 유발시키고 불안감은 강박관념을 유발시키며 강박관념은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인간이면 누구나 자신의 외모나 자신의 행동 또는 자신의 하는 일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뒤진다고 느껴지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하면 열등의식을 느끼게 되고 열등감은 불안감으로 바뀐다. 

IV. 恨으로 인한 여러가지 증상 
한 마음 속에 풀리지 않고 쌓여있는 恨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거나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恨을 지닌 장본인이 살아있는 한 그를 따라다니면서 그에게 담판을 요구한다. 恨을 밖으로 내 보내 주든 가 아니면 恨의 공격을 받아 영, 정신, 신체가 파괴되어 죽든 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한다. 한 마디로 恨 자체를 인정해서 어둠 속에 가두어 두지 말고 밖으로 자유스럽게 내 보내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이 우둔해서 자신의 마음 한 가운데서 외쳐대는 恨의 소리를 듣지 못 하면 결국 恨은 여러 가지 무기를 사용하면서 인간을 파괴시키기 시작한다. 다음은 우리 마음 속에 쌓인 분노의 앙금 - 恨이 인간을 공략하는 무기들에 대한 설명이다. 
1. 불안 신경증 
2. 우울증 
3. 죄책감 
4. 병적 공포나 강박 신경증 
5. 불면증 
6. 과식증과 거식증 
7. 일, 성욕, 운동 등에 대한 과도한 집착 
8. 약물중독 
9. 순환기 장애 

V. 한 ( 恨 )풀이 목회에 대한 신학적 전거 
1. 인간의 한(恨)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사실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은 인간의 恨과 거리가 먼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아픔을 나눈다는 사상은 성서 전체를 통해서 나타나 있다. 구약의 출애굽 사건에서 그의 계약의 백성이 억압과 수난을 당하고 있을 때, 그들을 보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만나 볼 수 있다( 출애굽기 3 : 7 - 8, 33 : 14 - 15 , 민수기 10 ; 35 - 36). 하나님은 그가 택한 백성의 아픔에 대해서 방관자로서 동정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들의 아픔에 동참함으로서 무거운 짐을 덜어 주는 분이었다. 

2. 예수와 인간의 恨 
예수의 수난사를 살펴보면 더욱 뚜렷하다. 신약 성서의 주 관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픔을 당하신 인간되신 하나님으로 나타나 있다. 예수의 생은 아픔과 배반, 그리고 수치의 이야기였다. 그는 슬픔의 사람이었고 고통스러운 생에 익숙해 있었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인간의 아픔이 있는 곳이면 언제나 그곳에 함께 계셨다. 배고픈 자 목마른 자에게 함께 계셨고, 외로운 자와 감옥에 갇힌 자와도 함께 계셨다(마태 25장).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가? 아픔을 직면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묻는다. 마태복음 25장의 이야기를 보면 인간이 고난 당하는 바로 그곳에 하나님이 존재함을 보여 준다. 

3. 십자가의 恨과 새 역사 창조 
십자가의 죽음 그 자체는 절망이었다. 그것으로 세상은 끝나는 암흑이었다. 십자가를 지켜 본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죽음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절망의 절정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는 恨의 사람 예수를 그냥 두시지 않으시고 더 이상 엉킬 수 없는 한의 극치를 새 역사로 바꾸기 시작하셨다. 3일 후의 부활은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며 죽어간 예수님의 恨이 씨앗이 되어 피어 난 새 생명의 꽃이었다. 여기에서 인간의 恨은 부활의 기적을 이루는 씨앗이 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인간성장과 역사성장의 법칙을 볼 수 있다. 
인간의 아픔인 恨은 칠흙같은 어두움이면서도 너무나 밝은 태양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의 피맺힌 고통에 친히 동참하시어 부활의 승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마음 속에 맺힌 한을 통해서도 부활을 창조하신다. 

4. 목회의 핵심으로서의 恨풀이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들 가슴 속에 맺힌 한의 소리를 들으시고 애굽에서 해방시키셨고, 예수님도 구원사업의 대부분을 한 맺힌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한을 풀어 주시는데 생을 보내셨다. 여기에서 예수님을 만나 한이 풀린 사람들은 새 사람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본다. 이것은 한이 풀린다는 것은 마음의 상처만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구원에 이르는 것을 볼 수 있다. 한이 마음 속에 서려있다는 것은 새 사람으로의 구원에 이르지 못함을 의미한다. 에수님은 제단에 제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이웃과 맺힌 응어리를 풀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마음 속에 한을 품고 있는 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차원에서 목회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마음 속에 풀리지 않고 축적되어 있는 恨을 풀어내는 일이다. 교인들의 한, 백성들의 한을 도외시한 목회는 하나님의 근본 의도와 예수님의 삶과는 거리가 먼 목회라고 밖에 볼 수 없다. 

VI. 한 풀이를 위한 목회 
위의 한풀이에 대한 신학적 전거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은 인간의 한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꼭 들어주심으로 응답하셨음을 보았다. 목회가 예수님의 명령을 이행하는 일이라면 목회자 역시 교인들의 가슴 속에 쌓인 한의 소리를 들을려고 해야 하고, 그 한을 치유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아야 한다. 교인들의 한을 치유하기 위해 목회자가 유의해야 할 몇가지를 논하고저 한다. 

< 恨은 인간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운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 
고통을 통해서 인생의 진리를 터득했던 롤로 메이(Rollo May)는 인간은 고통에 직면했을 때 기뻐해야 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은 인간의 인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 찬란한 빛을 던져 주었든 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분석해 보면 거의가 가슴에 恨을 품고 살았든 사람들이다. 이것은 조개 속에 들어 간 하나의 모래알이 주는 아픔을 견디어 내는 과정에서 진주가 나오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세월은 가도 우리들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 남아서 삶의 지혜를 제공해 주는 위대한 예술가 에드가 알란포나 쉘리, 반 고호, 도스또 에프스키 등의 큰 업적은 오직 그들이 겪었든 피나는 한의 생애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의 마음 속에 쌓인 한은 고통을 동반하게 되는데 고통의 감정이 건전하게 발산할 때 인간을 성장시키는 몇가지 힘을 발휘한다. 
첫째 인간은 고통을 통해 자기가 누구인가를 자각한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보면 탕자가 고통의 극치에 다다를 때 자신을 깨닫고 아버지를 새롭게 자각한다. 
둘째 인간은 고통을 통해서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겸손의 삶으로 변화될 수 있다. 
셋째 인간은 고통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 심도있는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아픔을 가져 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넷째 인간은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께 더 가깝게 다가 갈 수 있다. 고통이 심하면 심할수록 인간은 하나님을 더 찾으면서 신앙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어디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이다. 
위와 같은 면에서 생각하면 인간의 한은 인간을 움추리게도 할 수 있지만 인간을 새로운 창조의 인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기독교인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면 우리 자신의 고통스러운 한이나 다른 사람의 한을 성장과 변화의 힘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 한(恨)의 정체를 밝힌다 > 
한을 치유하는데 필요한 요소가 있다면 첫째가 자각이다. 즉 한의 정체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 내재하고 있는 한의 정체를 인식하지 못 하는 것은 치유할 수 있는 한계 밖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한이 언제, 아디서, 누구와의 사이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들어왔으며 그 한이 어떤 영향을 나의 영, 정신, 신체에 미치고 있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한의 정체를 자각하는 순간 한은 위력을 상실하기 시작한다. 나를 무의식 중에 지배하든 한의 힘이 약화되면서 반대로 나의 생명력은 강화되기 시작한다. 
정서적으로 우울해 있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억눌린 사람들,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먼저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의 응어리를 자각하게 하는 것이요. 다음은 한의 감정을 건전한 방향으로 표현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들에게 쌓인 한의 감정을 들어 내 놓게 하는 것은 어둠 속에 갇혀있어 질식사할 지경에 있는 사람에게 새로운 생명의 힘을 불어 넣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서 암흑의 세계에서 해방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축적된 한을 쏟아놓게 돕는 것은 인간 해방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인 것이다. 

VII. 결 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인간의 한의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일 수도 있지만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은총의 요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님은 인류 역사의 성장을 위해 주로 한 많은 사람을 들어서 쓰셨다는 사실이다. 흔히 우리 한국 백성을 일컬어 한 많은 민족이라 하는데 이것은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일이다.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우리 백성의 한이 올바른 출구를 찾아 분출할 수 있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엄청난 창조의 역사를 이룩할 것을 확신한다. 
나는 지금까지 심리적인 측면에서 한의 생성 과정과 영향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우리 백성의 가슴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한을 파헤치고 이 엄청난 힘이 터져 나갈 수 있는 분출구를 제시해 주는 연구가 나와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우리 백성의 한이 놀라운 힘으로 분출되었든 예를 3 .1 운동에서, 4 . 19에서, 5. 18, 그외 여기 저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회 활동에서 얼마든지 보아왔다. 우리의 한을 하나님께서 들어서 부활의 역사가 되게 하실 그날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글쓴시각 : 2001/05/16 - 13: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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