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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상담의 역사

chci

  • 등록일2003.07.28  |  
  • 조회수9,399

김선남 교수(경상대학교 학생생활연구소)




가족상담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요구되기 시작한 때는 1990년
대 이후로 여겨진다. 그 이유는 그동안 우리나라 가족은 가부장
제의 전통과 계층적 질서에 의해 안정되어 있어 일찍부터 가족상
담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적인 질서는
1960년대 산업화 정책에 의해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면서 진행된
핵가족화 내지 남·여 평등사상으로 붕괴되어 왔다. 가족 기능
약화의 결과가 1980년대부터 개인 및 사회 전반에 나타나면서,
문제 해결을 개인 초점에 맞쳐 시도하였고 대증적 사회 정책의
한계를 1990년대에 와서야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문제를 보
는 가족상담적 인식론과 문제해결의 가족상담적 접근법이 절실
히 요청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가족상담 운동의 진원지인 미국에서는 2차 세
계대전이 가족상담의 인식론이 제공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미
국은 다급해진 방공무기 개발에 다학문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수
학자, 물리학자, 화학자, 인류학자, 심리학자 등으로 연구팀이
결성되어 열추적 미사일 개발에 성공하면서 사이버네틱스
(cybernetics)라는 과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발달시켰다.
1940년대 연구팀의 일원이었던 수학자 위너(N. Wiener)가 사이버
네틱스를 발표하고, 인류학자 베이츤(G. Bateson)이 사이버네틱
인식론을 가족상담 분야에 소개하였다.

1950년대 베이츤은 사이버네틱 인식론과 화이트헤드와 럿셀의 논
리적 형태론을 출발점으로 삼아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프로젝트
를 지휘하였으며, 그 결과 1956년 정신분열증 환자 가족에 있는
이중속박 가설(double bind hypothesis)을 발표하였다. 이 연구
는 베이츤 프로젝트에 연구원으로 참여한 헤일리(J. Haley), 잭
슨(D. Jackson), 위크랜드(J. Weakland) 등이 가족상담의 의사소
통적 접근을 발달시키는 터전이 되었다.

베이츤 프로젝트가 완수되면서 연구원들은 잭슨의 제안에 따라
MRI(Mental Research Institute)를 만들었으며, 후에 세티어(V.
Satir)까지 가담하여 가족상담에 관한 연구와 가족상담자 훈련
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1960년대에 이르러 잭슨은 가족항상성
(family homeostasis) 개념으로 가족상담의 의사소통 모형을 발
달시켰으며, 헤일리는 지배력 투쟁(power struggle) 개념으로 가
족상담의 전략적 모형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세티어는 자존감 수
준(level of self-esteem) 개념으로 가족상담의 인간성장 모형
을 개발하였다.

미국에서 가족상담 운동은 197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는데, 그것
은 1950년대 이중속박 가설에 이어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들, 이를테면, 보웬의 자아분화, 휘
테이커의 부조화의 심리치료, 릿즈의 부부 분열과 편중, 윈의 의
사상호성, 보조르메니-나지의 대차대조표, 미뉴친의 가족구조 등
이 어우러져 가족상담의 다양한 이론적 모형들이 발표된 것이
다. 예를 들면, 가족상담의 심리역동적 접근, 경험적 접근, 구조
적 접근, 의사소통적 접근, 행동적 접근 등이다. 최근에 우리나
라에는 이들 대부분의 모형들이 소개되면서 상담 실제에도 활발
히 적용되고 있다.


이 자료는 카운피아에서 가져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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