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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렬] 노년에 해야 할 심리적 과제

ch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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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건강하다면 행복한 노년기를 보낼 것이라 말합니다. 그럴 때 건강은 우선 신체적인 건강을 생각합니다. 몸의 건강을 중요시 하며 무엇을 먹어야 좋은지, 어떤 운동을 할 것인지, 이런 것들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우리가 입고 있는 것은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마음의 건강에 대해서는 지나쳐 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행복, 보람, 즐거움의 문제는 마음의 건강 문제입니다. 내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괴롭히게 됩니다.
그러면 노년기의 삶에 있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남을 괴롭히지 않는 즐거움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이런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노년기에 해결해야 할 우리들의 마음의 과제는 용서입니다. 마음속에 쌓인 것이 많아 감정의 응어리가 많을수록 현재의 삶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합니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 한다”는 말은 응어리진 한이 풀리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인데, 그 응어리가 남아 있으면 행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만날 수가 없습니다. 사람에게 한이 있으면 현재의 삶이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을 푸는 것이 노년기의 과제입니다. 노년기는 용서와 화해를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노년기에는 지난 일들 중에 미진했던 부분도 있을 것이고, 한스러웠던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자랑하고 싶은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억울하게 생각되었던 일들을 풀어 놓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맺혔던 일을 털어 놓아야 합니다. 한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할머니 한 분이 시집 간 딸을 붙들고 젊어서 무척이나 바람을 피운 남편에 대한 한 많았던 이야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 했습니다. 딸은 “그 속상했던 이야기를 왜 자꾸 하냐”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더도 말고 너 같은 딸을 하나 낳아 보라”고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이제는 딸이 자신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들어 주려니 하고 푸념 섞어 한 말인데, 억울한 심정을 알아주지 않는 딸이 너무나 야속했던 것입니다. 나름대로 한풀이를 한 것인데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상담자가 그 할머니의 한 맺힌 이야기를 다 들어주자 “그래도 그 영감이 허우대 하나는 멀쩡했지” 하고 말하더랍니다. 그 말하는데 30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던 것입니다. 이제 억울했던 감정이 풀리니 남편의 밉지 않은 다른 모습이 보인 것입니다. 억울하고 화 날 때는 보이지 않던 남편의 다른 모습이 보인 것입니다. “우리 영감이 잘못한 것보다 꼬리친 년들이 나쁘지 영감이 무슨 죄가 있어” 하는 긍정적인 감정이 생긴 것입니다.

노년기는 잃어가는 과정입니다. 친구, 배우자, 일 등 경제적인 능력도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실은 좋은 점도 있습니다. 이제는 모든 책임에서 해방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배우자를 잃으면 어느 한 쪽이 의무감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일 때문에 하지 못했던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긍정과 부정의 양면이 있습니다. 잃는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쪽이든 용서하지 못하면 그것은 해방이 아니고 더 힘들어집니다. 용서, 화해를 통해서 마음이 해방이 되면 행복해집니다. 미운 감정을 꽁꽁 여미면 마음의 해방을 느낄 수 없습니다. 한은 부정적인 감정인데 이것으로부터 벗어나야 기쁨을 갖게 됩니다.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 상담이고 치유과정입니다.

치유상담연구원의 정태기 원장님이 36세까지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두 집 살림 때문에 힘들게 살았는데 치유과정을 통해 아버지를 용서하니 부모가 나를 미워했던 것이 아니고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렇게 치유사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나 정태기 원장님의 생각이 바뀌어 아버지를 용서하고 화해를 통해 삶이 달라진 것입니다. 이 상대에 대한 생각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한국 무속에서는 살풀이로 풀어낸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마음을 들어내야 무거운 짐을 덜어내는 것입니다. 화해와 용서가 무거운 짐을 덜어내는 일입니다. 이렇게 사람 사이에서 생긴 한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풀 수 있지만 인간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한도 있습니다.

이산가족의 만남에서 어떤 할머니가 “무슨 자전거 하나 사오는데 오십 년이 걸리느냐?”고 한 할머니의 절규는 할아버지의 잘못일 수는 없습니다. 38선이 막혀 못 간 것이지 할아버지의 잘못일 수는 없습니다. 이 한은 사람이 풀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저는 부모님 모두 고향이 평양입니다. 저의 아내도 함경도가 고향이어서 가족끼리 모이면 이산가족의 아픈 이야기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할머니께서는 어느 날 “네가 대학에 들어갔으니 이제 알 것은 알아야 한다.”면서 작은 아버지는 지금 둘째 부인과 살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놀라 물으니 첫 부인은 이북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신혼 때 장사하러 남쪽에 내려왔다가 38선이 막혀 북쪽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게 되어 첫 아내를 그리워하던 나머지 병이 생겨 병원에 입원했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간호사의 극진한 간호와 호의로 다시 만날 수 없는 아내를 포기하고 그 간호사와 결혼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뜰에 있는 꽃에 물을 주고 있었는데 작은 아버지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들어오십니다. 그 뒤에 웬 여자가 따라 들어옵니다. 방으로 들어가자 그 여자가 “어머니”하고 통곡하는 것이었습니다. 20년이란 세월이 지난 뒤, 작은 아버지의 첫 부인이 찾아 온 것입니다.

작은 아버지가 버스에서 한 남자를 만났는데 무척 낯이 익어 확인하니 처남 매부인 것을 알아보고 누이의 안부를 묻자 남편 찾아 이북에서 내려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이라고 하겠습니까?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 한은 인간의 힘으로는 풀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노년기에는 하나님을 꼭 만나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를 잘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이 됩니다. 어려서는 부모, 아이 때는 친구, 학생 때는 교사, 젊어서는 배우자, 중년에는 자녀, 인간관계가 그의 일생을 만듭니다. 이것이 인복입니다. 노년기에는 한 발은 저 세상과 한 발은 이 세상에 걸치고 있습니다. 인간의 잘못은 인간이 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 풀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노년기에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풀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한 제자가 구걸하는 맹인을 보고 묻습니다. “예수님, 구걸하며 사는 것은 본인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아비의 죄 때문입니까?” “그것은 본인의 죄도 아니고 아비의 죄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알건 모르건 하나님의 영역은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풀어집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상담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으로는 치유로 풀어야 합니다. 어서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해결해 주셔야 할 부분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그분의 깊은 뜻이 있어서 우리에게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당하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이것은 하나님을 만나야 풀 수 있는 일들입니다.

성경 창세기45장 5절에서 보면 요셉이 이집트로 오게 된 것은 형들이 팔아서 오게 된 것이 아니라 목숨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 여기에 오게 된 것이라 하면서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이것이 화해와 용서의 삶입니다.

내 삶의 문제 중 어떤 부분은 나의 개인적인 어떤 문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할 때, 용서와 화해가 가능해집니다. 내가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은 나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나를 짓누르는 이 무거운 짐을 화해와 용서로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렇기에 행복한 노년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심리적 과제는 용서와 화해입니다. 이 숙제를 털어버릴 때, 노년의 기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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